어벤져스와 해커톤, 그리고 미디어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뉴스보다 훨씬 흥미로운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언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간의 화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대사처럼 ‘모든 걸 걸고’(Whatever it takes) 달려든다면 과연 살길이 있긴 할까? 현실에는 인피니티 건틀렛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거니와, 시리즈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팬도 없다. 무엇보다 뉴스 미디어가 그동안 나름대로 구축한 ‘세계관’이 통째로 흔들리는 상황이니, 누구도 생존비법을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핀란드 로바니에미에서 열린 해커톤(hackathon) 대쉬 라플란드(Dash Lapland)에 참가하면서, 위의 질문을 며칠 내내 고민해볼 기회를 얻었다. 이번 해커톤에는 세계적인 화학업체 케미라(Kemira)와 놀이터 디자인 그룹 랍셋(Lappset) 등 핀란드기업 여섯 곳이 과제를 제시했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30개 국적 참가자 150명이 모였다. 나는 팀원 네 명과 머리를 맞대고 핀란드 북부지역 최대 언론사 깔레바 미디어(Kaleva Media) 과제에 도전했다.


120년 역사를 가진 깔레바 미디어가 낸 과제는 두 가지였다. 첫째, 밀레니얼(millenniels)을 위한 뉴스 미디어는 어때야 하는가? 둘째, 북극권 지역 언론으로서 브랜딩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독자 확대와 마케팅 전략 모두 한국 언론에서도 흔히 하는 고민이라, 그 취지와 배경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새로운 독자를 찾는 일은 우리에게도 생존 문제다. 데이터를 살펴보니 현재 가장 큰 구독 중단 이유가 독자 사망이다.” 해커톤 내내 의견을 함께 나눈 깔레바 서비스 디자이너의 말이다. 미디어 생태계 변화와 인구 고령화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했다.


내가 속한 팀은 가장 먼저 핀란드 밀레니얼 세대와 미디어 습관을 분석했고, 현재 기술과 디자인으로 뒷받침할 솔루션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소셜미디어 사용이 일상적인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전 세계 미디어업계에서 늘고 있는 구독 모델을 참고하면서, AI 스피커 확산에 대비한 오디오 클립 제작도 해결책에 포함했다. 북극권 이슈와 같은 특정 분야에 관해 전문성이 뛰어난 프리랜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면을 내주자는 의견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내가 속한 팀은 미디어 부문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결과보다 더 흥미로운 결실은 깔레바 미디어 측 제안이었다. 언론사는 우리가 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시범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작은 규모로라도 실제 독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시각이었다. 더 깊은 독자 분석과 케이스 스터디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뒤, 언론사 소속 UX·UI 디자이너 및 개발자가 합류해 서비스를 디자인하기로 했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개발자가 많은 북부 도시 오울루(Oulu)에 본사가 있는 만큼, 다양한 스타트업과의 협업 가능성도 열어뒀다. 생존전략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걸어보겠다는 태도였다.


개인적인 경험과 주변 증언을 종합해보자면, 여전히 한국 언론사 대다수는 새로운 독자를 찾거나 활동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데 소극적이다. “언론은 사회적 공기”라는 닳고 닳은 문장을 되뇌면서, 그 사회적 책임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과 대상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은 직시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에 한 번 실패하고 나면 곧바로 안전지대로 돌아가려 하는 회귀본능도 보인다. 잘나가던 시절만을 생각하며 전략을 짜내니, 젊은 직원 시각에선 답답한 타개책만 간부 회의에 등장한다. 해커톤처럼 아주 새로운 방식이 아니어도 아이디어는 많다. 기왕 어벤져스가 극장가를 뒤덮었으니, 여기서 해결책 구상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영화 속에 ‘인피니티 스톤’이 대표하는 여섯 가치가 나온다. 현실, 진정성, 고민, 플랫폼, 타이밍, 흡인력(Reality, Soul, Mind, Space, Time, Power) - 마음대로 한 번역인데, 한국 언론에도 꽤 그럴듯하게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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