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욱 헤럴드 회장이 17년 몸담은 회사를 떠나면서 이메일 한 통 남긴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몰인정했다. 긴 세월 한솥밥 먹은 구성원을 아끼고 사랑했다면 그럴 일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매각 소식에 걱정과 염려가 컸을 구성원들을 생각하면, 그의 행태는 실망스럽고 무책임하다. 구구절절하게는 아니더라도 매각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게 상식이다. 2002년 경영난에 빠진 헤럴드를 인수해 3년 만에 흑자 전환한 뒤 지난해까지 14년 연속 흑자 경영을 해왔다고 자랑하면서 왜 이런 식으로 떠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홍정욱 회장은 지난 15일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중흥그룹에 저와 일부 주주가 보유한 헤럴드 지분 47.8%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며 헤럴드 매각을 공식화했다. 그는 식품 자회사 올가니카 등 헤럴드 식품 계열사를 모두 인수하고 이들 기업이 헤럴드에 진 부채도 상환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헤럴드의 미래를 책임질 중흥그룹의 영입은 대주주로서 마지막 소명”이라며 “그간의 성과는 온전히 여러분의 몫이고, 과오는 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이메일 이별’ 통보였으니 구성원들이 느꼈을 자괴감은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오죽했으면 헤럴드 기자 노조가 “먹튀 하려는 것인가?”라고 했을까.
홍 회장이 헤럴드 매각을 공식화한 이튿날인 지난 16일 헤럴드경제 기자들이 총회를 열었다. 헤럴드 매각과 관련해 설명회 개최 요구와 대응 TF 구성이 참석자들 사이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20일에는 헤럴드경제 기자협회, 코리아헤럴드 기자협회, 헤럴드경제 노조, 헤럴드경제 기자 노조 등 4개 단체가 회합을 갖고 현 경영진에 매각 설명회 개최를 공식 요구했다. 응답 않던 경영진이 4개 단체의 요구를 수용해 22일 오후 매각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홍 회장이 직접 나와 구성원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속시원하게 밝히길 바란다.
헤럴드를 인수한 중흥그룹은 자산총액 9조7000억원으로 재계 서열 34위다. ‘중흥S클래스’ 브랜드를 앞세운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지난해 연매출 5조원, 순이익 1조원을 넘어선 건설기업이다. 중흥그룹은 6월말 인수 절차가 완료되면 헤럴드경제와 코리아헤럴드를 발간하는 헤럴드의 새 대주주가 된다. 중흥그룹은 재작년 5월 광주지역 일간지 남도일보를 인수한 데 이어 그해 서울신문과 ‘이코노미서울’이란 경제지 창간을 추진하기도 했다. 경제지 창간이 서울신문 내부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자 인터넷 경제신문 인수 등 끊임없이 언론산업 진출을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헤럴드 인수에 대해 중흥그룹은 사업 다각화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언론계 안팎에선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그리고 서울 등 수도권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언론사가 필요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근거 없는 루머로 판명됐지만 매각 발표 즈음에 헤럴드경제의 5년 전 중흥건설 관련 기사가 수정되고 있다는 지라시가 삽시간에 퍼졌다. ‘건설사 사주의 방패막이’ 우려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건 중흥그룹의 몫이다. 중흥그룹이 편집권 독립, 자율경영, 구성원 고용승계를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헤럴드경제의 경우 사진부도 사라지고, 특파원도 사라지고, 교열팀도 없어지고, 편집부도 대폭 축소됐다고 한다. 다른 부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중흥그룹은 인력 및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구성원들의 염려를 기대로 바꿔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