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논 그라타'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이 꼬리를 물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과 칠레, 이스라엘을 잇달아 방문했다. 관례를 깨고 남미 국가가 아닌 미국을 첫 방문지로 선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축구 유니폼을 교환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칠레와 이스라엘 방문에서는 적지 않은 구설을 낳았다.


칠레에서 보우소나루는 우파 정상들과 함께 새로운 지역국제기구인 프로수르(PROSUR) 창설 선언문에 서명했다. 좌파 주도의 남미국가연합을 무력화하는 이벤트였다. 이어진 칠레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보우소나루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높이 평가하는 발언으로 ‘오버’를 했다. 난처해진 칠레 대통령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발언이 유쾌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유감을 표시했다. 우파인 칠레 대통령도 보우소나루의 극우 발언을 부담스러워 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방문에서는 예루살렘에 무역사무소를 설치하고,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브라질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말해 아랍권의 공분을 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교의 성지이며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미래의 수도로 주장하고 있다. 예루살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해서는 “나치즘은 좌파에서 비롯됐다”는 엉뚱한 말로 유대인들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측이 보우소나루의 발언을 정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해프닝이 계속되자 작년 대선에서 좌파 노동자당 후보였던 페르난두 아다지 전 상파울루 시장은 노동절 기념행사 연설을 통해 보우소나루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외교적 기피인물)’로 부르며 그의 행보를 비난했다. 미국-브라질 상공회의소 주최로 5월 중순에 열린 ‘올해의 인물’ 시상 행사를 통해 기피인물 논란은 현실이 됐다. 행사는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미국 민주당 소속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의 압력으로 취소됐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아마존 열대우림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보우소나루에게 ‘올해의 인물’ 상을 주는 행사를 다른 곳도 아닌 자연사박물관에서 개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더블라지오 시장은 보우소나루를 ‘위험한 인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댈러스 시로 장소를 옮겨 행사가 열렸지만, 이 행사를 기회로 월가의 투자자들을 불러 모으려 했던 보우소나루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보우소나루가 국내외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며 코너로 몰리자 브라질 외교장관이 나섰다. 외교장관은 보우소나루를 ‘핍박 받는 예수’에 비유하며 적극 변호했다. 그러나 누적된 이미지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국내 문제에서도 연금개혁과 교육·보건 예산 삭감, 총기 소유 허용범위 확대 등에 대한 반발, 장남을 둘러싼 부패 의혹 등이 보우소나루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다. 4월 말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 수행 평가는 긍정적 35%, 보통 31%, 부정적 27%로 나왔다. 집권 4개월 차를 기준으로 보우소나루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역대 정부와 비교해 24년 만에 가장 저조한 것이다. 보우소나루 정부가 너무 일찍 틈을 보이면서 야권에서는 벌써부터 반 보우소나루 전선 구축을 위한 초당적 연대가 모색되고 있다. 이러다가 브라질 안에서도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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