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기생충’의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계가 떠들썩하다. 언론은 ‘100년 한국 영화사의 쾌거’라고 대서특필했다. 봉 감독은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특히 송강호는 봉 감독이 만든 8편의 장편영화 중 절반에서 주연을 맡아, 그의 ‘페르소나’(분신)라고 불릴 정도다. 봉준호 연출-송강호 주연의 첫 영화는 ‘살인의 추억’(2003년)이다. 살인이라는 섬뜩한 단어와 추억이라는 아련한 단어의 묘한 조합이 눈길을 끈 작품이다.
요즘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 중인 삼성을 바라보며 ‘삼성의 추억’이 연상되는 이유는 왜일까? 분식회계 증거인멸을 위해 공장 바닥을 뜯고 컴퓨터 서버를 감췄다는 이야기는 영화에서나 봄 직한 장면이다. ‘삼성 영화’의 주역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작업을 주도한 삼성전자 사업지원TF다. 사업지원TF는 사실상 삼성의 컨트롤타워(사령탑)로 불린다.
삼성 회장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역대 삼성 컨트롤타워의 이름이다. 이병철 창업자 때인 1959년 만들어진 뒤 네 차례나 간판이 바뀌었지만, 본질적 기능은 동일했다. 삼성 컨트롤타워의 기획력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전문경영인의 역량과 함께 오늘날 삼성의 성공 신화를 만든 3대 주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적 실체도 없이 삼성의 각종 불법·편법을 주도했다는 불명예도 따라다닌다. 삼성은 2006년 안기부 X파일사건 관련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구조조정본부의 이름을 전략기획실로 바꾸었다. 이어 2008년 비자금 의혹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과 핵심임원들이 기소되면서 전기실 해체를 발표했다. 2010년 미래전략실로 부활했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 이재용 부회장과 핵심임원들이 국정농단 및 뇌물 사건으로 대거 기소되면서 또다시 불명예 해체됐다.
삼성은 미전실을 해체하며 과거처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미전실의 사장급 이상 핵심임원들도 대부분 옷을 벗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삼성전자에 사업지원TF를 만들고, 책임자로 미전실 인사팀장 출신인 정현호 사장을 앉히면서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정 사장은 분식회계 증거인멸의 책임자로 꼽힌다.
결국 삼성 컨트롤타워는 명칭과 소속이 바뀌었지만, ‘불법·편법의 주역’이라는 DNA는 전혀 달라진 게 없음을 보여준다. ‘삼성의 추억’은 ‘1등 기업 삼성’과 ‘불법의 삼성’이라는 상충된 이미지가 기괴한 조합을 이룬다. “국민들이 보고 있다. 지켜봐 달라.”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미전실 해체를 약속했던 이재용 부회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