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와 산업재해를 유발하는 장시간 근로, 합계 출산율 1명을 밑도는 ‘초저출산 사회’진입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가정 양립’이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가 된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한국 언론은 일과 가정 양립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냈지만, 정작 언론사 종사자들에게 이는 구두선에 지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일반 기업들은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일이 조직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앞다퉈 ‘자동육아휴직제’ ‘자녀입학돌봄 휴가·휴직제도’와 같은 가족친화적 복지제도 도입에 나선 것과 달리 언론사들은 오랫동안 남의 집 불 구경하듯 했다. 오히려 업무의 특수성을 내세워 업무시간 단축, 출산·육아 휴직 사용 등 법으로 보장된 제도의 활용조차 소극적으로 대처한 게 사실이다.
변화의 단초가 된 건, 여기자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크게 변화한 언론사의 인력구조다. 한국여기자협회에 따르면 1996~2000년 입사한 여기자는 122명이었지만, 2011~2015년 입사한 여기자는 350명을 넘는다. 출산과 육아의 장벽에 가로막힌 여기자들이 경력 단절을 겪고 기자직을 그만두는 일이 언론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여기자의 육아휴직은 이제 정착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기자협회보가 경향신문, 국민일보, 매일경제 등 국내 주요 신문사 13곳을 대상으로 2016~2019년 육아휴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여성 육아 휴직이 나오지 못한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2014년에 첫 공식 육아휴직자가 나오는 등 육아휴직 사용에 소극적이었던 한 경제지조차 지금까지 10명의 여성 육아휴직자가 나올 정도다.
문제는 아직까지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있는 남성의 육아휴직제도다. 13개 언론사 중 2016~2019년 남성 육아휴직자가 나오지 않은 언론사는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경제 등 3개사에 달한다. 1년에 5명의 남성 육아휴직자가 나오기도 하는 다른 언론사와 비교해 볼 때, 특히 남성 육아휴직 가능 여부는 언론사별로 천차만별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성의 육아휴직을 독려하기 위해 이른바 아빠 육아휴직제(한 자녀에 대해 부모 중 두 번째 사람이 쓰는 육아휴직) 혜택을 크게 늘리는 등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여건은 무르익은 셈이다. 하지만 상당수 언론사에서 아직도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기자는 ‘용감한 아빠’가 돼야 한다. 이는 언론사 문화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자들의 육아휴직이 일상화하지 않았을 때인 수년 전처럼, 일부 언론사의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쓸 경우 승진이나 근무 평가에서 뒤처져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암묵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신문사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기자 2명이 개인적 이유로 퇴사하면서 남성의 육아휴직을 백안시하는 사내 문화가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변화의 단초는 보인다. 아직까지 남성 육아휴직자가 없는 한 종합경제지의 기자는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의 문제이지, 돌파구만 열리면 남성의 육아휴직도 여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회변화의 흐름을 먼저 읽어내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육아휴직의 제약은 변화에 역행하는 일이다.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언론사의 육아휴직 정착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