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없으니 대신 내 학자금 지원은 안 되나요"

[시대에 뒤처진 '언론사 복지제도']
독신이거나 출산 않는 등 다양한 가족 형태 나타나지만
제도는 여전히 '4인 가족 중심'
결혼·출산 생각 없는 기자들, 자녀 학자금 효용성 의문 제기

“사내 복지 제도가 너무 부족해요. 결혼 계획도 없고 출산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복지 혜택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지 8년차 A 기자는 동료가 사내 복지의 수혜를 받을 때마다 매번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개인 경조사비부터 자녀 학자금, 관련 휴가 등은 혼자 사는 그에겐 먼 나라 이야기여서다. 그는 “가정을 꾸린 동료의 지출이 많다는 것도 이해하고 회사가 돕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사회가 변화하고 있지 않나.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좀 더 다양한 복지 지원책이 논의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인 가구,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 등 가족의 형태가 점차 다양해지면서 사내 복지 체계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인 가족을 꾸리는 것을 전제로 한 결혼·출산 위주의 사내 복지 체계로 인해 다른 가족 형태를 갖고 있는 직원들이 매번 상대적 차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협회보가 10개 종합일간지와 경제지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언론사들은 많게는 100만원부터 적게는 10만원까지 결혼과 출산축하금을 지급하고 있었고 대부분 전액 수준의 고등학교·대학교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종합일간지 11년차 B 기자는 “그만큼 연봉 차이가 난다고 냉정하게 생각하는 기자들도 있다. 개인의 삶이 다양해지면서 부모든 동거인이든 반려동물이든 부양하는 대상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사내 복지는 대부분 배우자와 자녀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4인 가족이 대세였을 땐 지금의 방식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요즘엔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결혼을 했더라도 만혼인 경우 자녀 대학교 등록금 수혜가 불가능해 불만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 사회에서 결혼을 했거나 자녀를 둔 기자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한국의 언론인’ 보고서를 보면 2009년 72.2%였던 기혼율은 2013년 61.4%, 2017년 59.1%까지 줄었고, 자녀를 둔 기자의 비율도 2009년 88.0%에서 2013년 50.9%, 2017년 50.2%로 40% 가까이 급락했다.


언론사에서도 이런 사회 변화상을 의식하고 어떻게 하면 복지 혜택을 다양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박훈상 동아일보 지회장은 “올해 임단협 때 조합원들을 상대로 요구 사항을 조사했더니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20대 조합원들의 요구가 좀 있었다”며 “특히 ‘나는 결혼할지도 모르겠고 아이가 생길 지도 모르겠으니 당장 내 학자금을 회사에서 갚아줬으면 좋겠다’는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부분을 반영해 다양한 복지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환 한국일보 노조위원장도 “노조원들의 다양한 요구가 있어 일단 아이디어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선 단협에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따른다’는 식으로 명문화할 생각이다. 결혼하고 출산을 해야만 혜택을 받는다는 명제가 성립될 수 없도록 큰 틀에서 개념을 잡고 세부적인 것들은 추후 만들자는 구상”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노조 역시 올해 임단협의 방향을 ‘보편 복지’로 잡았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이들을 위한 복지 혜택을 늘리자는 취지다. 서울경제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임직원과 배우자에 한해 시행되던 종합건강검진을 임직원 및 가족 1인으로 확대했다. 배우자가 없는 직원이라도 직계 존비속이 건강검진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특히 오는 2021년 전면적인 고교 무상교육을 앞두고 그동안 지원됐던 고등학교 학자금만큼의 새로운 복지 제도를 논의해보자는 대안도 나오고 있다. 한대광 경향신문 노조위원장은 “저희 회사의 경우 현재 일반고 기준 고등학교 학자금 수혜를 받는 인원이 40여명으로, 1년 기준 7000여만원이 나간다”며 “고교 무상교육이 시행되면 이 돈이 절약되는 셈이다. 복지기금이 별도로 있는 곳이라면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대부분이 고민 단계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구체적인 요구안을 만들려고 해도 언론계에 마땅한 선례가 없어서다. 몇몇 일반 기업에서 시행되고 있는 본인 학자금 대출 상환이나 ‘가족’돌봄휴가제도, 반려동물 수당 등이 그나마 대안으로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안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언론사에서 이를 받아줄 지는 미지수다.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 경제지 노조위원장은 “복지라는 게 없는 걸 만들고 있는 건 지키는 관점으로 가야 하는데 회사에선 새로운 걸 만들자고 하면 하나를 줄이려고 한다”며 “그렇다고 기존의 복지 제도를 줄이는 건 정답이 아니지 않나. 딜레마가 있어서 다양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는 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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