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나 홀로 기자회견’을 했다.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1동 법무부 브리핑실에 그가 들어섰을 때 기자석은 텅 비어 있었다. 법무부 출입기자단이 기자회견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출입처 수장의 이례적 기자회견을 보이콧해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박 장관이 입장문만 발표하고 질의응답은 받지 않겠다고 일방 통보했기 때문이다. 기자단의 보이콧 의사를 전달받은 박 장관은 “그래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텅 빈 기자실에서 8분간 입장문을 읽고 퇴장했다.
기자회견의 핵심은 질의응답이다. 장관의 입장문만 받아 치고 끝나는 것은 기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질문은 기자의 권리이자 본분이다. 나랏일을 하는 이들의 의무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성실히 답하는 것이다. 저널리즘 교과서는커녕,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의 기초 상식을 이 소중한 지면을 빌어 재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박 장관뿐 아니다. 우리는 이번 박 장관의 ‘나 홀로 기자회견’이 이 정권의 대언론 태도를 반영한 여러 사례 중 하나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최근 외교부는 언론을 상대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대변인마저 기자들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해 물의를 빚었다. 행정수반인 문재인 대통령도 기자들에게 “국내 문제는 질문하지 말라”고 한 전례가 있다.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후 다음 방문국인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국내 언론사의 출입기자들을 모아놓고 국내 문제는 질문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은 국내외 상식으로는 납득이 쉽지 않다.
질문에 답하는 것은 물론 곤욕스러운 일이다. 인정한다. 질문의 질이 심지어 낮을 때도 꽤 있다. 그럼에도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공복(公僕)의 의무다. 이번 박상기 장관 사태에 대한 댓글 중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럴 거면 뭐 하러 기자회견을 하나? 이 정권의 사소한 적폐 중 하나다.” 이 댓글에 화가 난다면, 모든 것을 또 언론 탓으로 돌리기 전에 이런 사태를 만든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곱씹어보길 바란다.
언론과 전쟁을 치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마저 기자들과의 질문은 피하지 않는다. 트윗을 통해 치고 박고 싸우는 방식을 택한다. 질문 기회를 박탈하고 뒤에 숨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를 두고 “망해가는 가짜뉴스 언론사”라고 공격을 하면서도 직접 NYT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입장을 전하고,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한다. 정면돌파다.
기자들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좋은 질문은 공부를 해야 할 수 있다. 내실 있는 질문을 하려면 자신의 출입처와 분야에 대해 끊임없는 탐구심을 갖고 출입처를 괴롭혀야 한다. 우리는 답변으로 출입처 관계자들을 평가하지만 출입처 관계자들은 질문의 질을 보고 기자들을 평가한다.
존 F 케네디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수십년간 백악관을 출입했던 고(故) 헬렌 토마스 기자의 말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나는 대통령을 존중합니다. 우리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에게 질문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고 그 기자가 무례한 것이 아닙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에게 때론 삿대질까지 하며 질문했던 토마스 기자에게 2009년 생일파티도 열어줬다. 21세기를 맞이하고도 19년이 흐른 지금의 대한민국 언론계에겐 마냥 부럽기만 한 일이다. 적어도 다시는 ‘나 홀로 기자회견’이 재현돼선 안 될 일이다. 촛불로 탄생한 이 정부에선 적어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