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가 자신의 음성을 변조해 취재원을 인터뷰한 것처럼 보도한 KNN에 대해 방송법상 최고 중징계가 내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인터뷰 조작이 확인된 KNN 보도 2건에 대해 ‘과징금’을 확정했다. 지상파방송사에 과징금 징계가 내려진 것은 방송심의 사상 처음이다. 과징금은 방송법상 최고 수준의 법정 제재로 지상파 재허가 심사에서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KNN은 총 2건에 대해 과징금 징계를 받음으로써 한 번에 20점을 감점받게 됐다.
KNN 보도국 김모 기자는 지난해 11~12월 부산신항의 문제를 지적하는 연속 보도를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해 ‘외국선사 관계자’, ‘부산항 터미널 관계자’ 등 다수의 익명 취재원을 인터뷰한 것처럼 방송했다. 또 지난 1월에는 노년층 피부건조증에 대해 보도<사진>하면서 역시 자신의 음성을 변조해 ‘60대 피부건조증 환자’를 인터뷰한 것처럼 내보냈다. 김 기자는 비정규직 편집요원에게 음성 파일을 주며 목소리 변조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심의위는 “기본적인 취재윤리를 저버린 것뿐만 아니라 한국 방송보도 역사에 전례가 없는 허위방송으로 시청자를 기만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KNN은 지난 1월 인터뷰 조작 사실을 자체 확인한 뒤에도 한 달 넘도록 쉬쉬하다가 언론이 이를 보도한 뒤에야 사과방송을 내보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김 기자는 다음 달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끝내고 비취재부서로 복직한 다. 당시 구두경고에 그쳤던 데스크(취재부장)는 현재 보도국장이다.
KNN 같은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사실 인터뷰 조작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취재원의 신원을 속이거나, 지인을 인터뷰하면서 ‘일반 시민’으로 포장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MBC 정상화위원회는 김세의 전 기자가 재직 시절 리포트 5건에서 인터뷰 조작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하철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이 사실은 MBC 취재차량 운전기사였다거나, 백화점 직원을 고객으로 둔갑시킨 일도 있었다. MBC는 또 지난해 1월 시민 인터뷰에 자사 인턴기자 출신을 섭외했다가 비난을 사기도 했다. MBC는 다음날 ‘뉴스데스크’에서 “기자가 자신의 지인을 섭외해 일반 시민 인터뷰로 방송한 것은 여론을 왜곡할 우려가 있는 보도 행태일 뿐 아니라, 취재윤리를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며 시청자에게 사과했다.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댓글란은 온통 ‘기레기’에 대한 성토로 도배된다. 끊이지 않는 기사 표절, 무단 도용 논란도 마찬가지다. 성실하게 취재해서 기사 쓰는 기자들까지 도매금으로 ‘기레기’로 엮이게 만든다.
국민일보는 지난 5월 기자 칼럼에서 전문가가 제공한 자료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고도 출처를 표기하지 않아 항의를 받고 삭제해야 했다. 지난 4월에는 중앙일보 뉴욕 특파원이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을 베껴 쓴 칼럼으로 직무 정지 처분을 받고 소환됐다. 중앙은 지난달 해당 특파원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었으나, 징계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서 기사 표절은 더 흔한 일이다. 인터넷신문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2017년도 인터넷신문 기사심의 결과 통계’에 따르면 자체 윤리강령을 위반한 사례 중 표절이 43.8%(1480건)로 가장 많았고, 세 번째로 많은 것이 출처표시(13.3%) 위반이었다.
문제는 표절 사실이 드러나도 대부분 기사만 삭제하고 어물쩍 넘어간다는 것이다. 세계일보는 지난해 11월 작성된 ‘라돈 생리대’에 관한 온라인 기사가 SBS의 취재파일 기사를 상당 부분 베껴 썼다는 항의를 최근 받고 기사를 삭제했지만, 공식 사과나 해명은 없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SBS 기자에게 개인적으로 사과를 한 게 전부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이른바 ‘우라까이’를 관행으로 묵인해온 문화가 표절에 무감각하고 책임지지 않는 타성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계의 잇따른 표절 논란을 지적한 논평에서 “포털에 의존해 기사량, 조회수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미디어 환경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이와 같은 구조의 문제만으로 독자를 기만하는 퇴행된 언론 현실이 만들어졌다고도 보기 어렵다. 언론의 존재 목적인 저널리즘의 구현을, 언론인으로서의 윤리를 내팽개치면서까지 생존해야 할 언론은 없기 때문”이라며 “냉철하고도 엄중한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