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10년 넘게 했는데, 연극무대 서니 손 하나 뻗는 것도 떨려"

[인터뷰] 연극 배우로 깜짝 변신... TBC 양병운 기자, 김명미 앵커

양병운 TBC 기자(오른쪽)와 김명미 TBC 앵커(가운데)가 지난 23일 대구 계명대 대명동 인근의 소극장 ‘작은무대’에서 연극 <진실-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두 차례 공연했다. ‘진실’은 칠레의 군부독재자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뒤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번 연극엔 모델 출신인 안근범씨(왼쪽)가 남자 조연인 로베르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어두웠던 무대에 환한 조명이 켜졌다. 1시간 30분의 연극이 막 끝난 참이었다. 상기된 얼굴의 배우들이 한 명 한 명 무대로 나와 인사하자 객석에서 큰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열연을 펼친 배우들에게 보내는 응원이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배우들은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었다. 기자이자 앵커였지만 지금만큼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배우의 얼굴이었다.


양병운 TBC 기자와 김명미 TBC 앵커는 지난 23일 대구 계명대 대명동 인근의 소극장 ‘작은무대’에서 연극 <진실-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두 차례 공연했다. ‘진실’은 칠레의 군부독재자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뒤의 상황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3명의 출연자가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김명미 앵커는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15년 전 고문당한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살고 있는 빠올리나 역을, 양병운 기자는 빠올리나의 남편이자 변호사이며 인권위원회 대표인 헤라르도 역을 맡았다. 또 다른 남자 조연인 로베르또 역은 모델 출신인 안근범씨가 맡아 열연을 펼쳤다.



놀랍게도 이들 모두 8개월 전까지만 해도 연극 경험이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이 지난해 11월 김 앵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양 기자는 “김 앵커가 발성과 발음을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는데 같이 배워보지 않겠냐고 했다”면서 “사실 23년 넘게 방송기자 일을 했지만 제대로 리포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늘 죄책감이 있었는데 이제라도 제대로 발성, 발음을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수업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시작된 직장인 연기반 수업에선 실제 연기를 하길 권했다. 연기는 발성과 발음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인물과 상황을 표현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양 기자와 김 앵커는 당황했지만 곧 도전해보자는 데 뜻을 함께 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연기 연습이 시작됐다.



연습 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저녁까지. 예상했던 대로 연기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양 기자는 “발성이나 발음은 몰라도 표정이나 몸짓을 이 나이에 배운다는 게 힘들었다”며 “동시에 두 가지를 못하는 직렬형 인간이라 더 그랬다. 많은 좌절을 겪었다”고 말했다. 대사의 양도 엄청났다. 김 앵커의 대사 중에선 A4 용지 두 장 반 분량의 독백도 있었다. 김 앵커는 “대사를 외우는 게 연기의 시작이었다. 외운 후에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며 “10년 넘게 방송을 했는데 무대에서 손 하나 뻗는 것도 떨리고 힘들더라. 대본을 들고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대사를 외우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피 나는 연습 덕분이었을까. 차츰 연기가 익숙해졌고 연습이 끝난 뒤엔 공허감 대신 보람이 가득 찼다. 김 앵커는 “그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걸 많이 얻는 기분이었다. 해보지 않는 것과 해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도 느꼈다”며 “피하고 싶은 고통이 나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킨다는 말이 꼭 맞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에게 연기는 단지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연쇄작용처럼 연기 이후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다. 양 기자는 “이전엔 암기를 시도해본 적이 없는데 대사를 외우다 보니 공부에 욕심이 생겼다”며 “머리가 더 녹슬기 전에 책을 한 번 펴볼까 한다”고 했다. 김 앵커는 “보컬 트레이닝을 해서 뮤지컬 도전을 해보고 싶다”며 “그 도전이 끝나면 또 해보고 싶은 목표가 생길 것 같다. 새로운 자극들을 주고 계속 도전함으로써 인생이 풍성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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