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3년' 뉴스 피하는 영국인들

[글로벌 리포트 | 영국]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인 2016년 6월23일,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 여부를 묻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했다. 과반수의 투표 참가자가 찬성한 만큼 영국이 맺어 온 국제 관계에 어떤 파장이 미치더라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스스로 EU 잔류를 주장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곧바로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다. 그 후임은 전 내무부 장관이자 영국은행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테레사 메이였다. 메이 총리는 취임 후 국민투표의 “결과를 존중하기 위해” 2017년 3월29일 정식으로 EU 측에 탈퇴 의사를 전달했다. EU 헌법대로라면 2년 내 탈퇴를 완료해야 했다.


하지만 그 기한을 넘긴 지금까지도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영국 하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템스강에 표류하고 있다. 메이 총리는 EU 탈퇴 절차와 이후 문제들에 대한 일련의 합의들을 정리해 하원에 제출했지만 세 차례 모두 부결됐다. 결국 메이 총리는 EU 측에 브렉시트 최종일을 10월31일로 연기해 달라며 굴욕적인 요청을 해야 했고, 인준 부결의 책임을 지고 보수당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현재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EU와 협상에 실패하더라도 탈퇴를 강행하겠다는 ‘노 딜 브렉시트’론을 한동안 펼쳤던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다. 존슨의 경쟁자는 메이 총리의 측근으로 EU와 협상할 의지를 가진 제러미 헌트 현 외무장관이다. 보수당은 차기 당 대표 겸 총리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 5차 투표에서 존슨과 헌트를 결선 후보로 선출했다. 보수당은 약 한 달에 걸쳐 전체 당원 16만여명이 참여하는 우편 투표로 존슨과 헌트 중 1명을 차기 당 대표로 선출할 예정이다.


어느 쪽이 되더라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현지의 중론이다. 독자적인 브렉시트 해법을 찾아내기엔 후임자에게 남겨진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새 총리의 취임일은 7월 22일로 예정돼 있어 단 3개월 만에 (메이 총리가 2년 동안 해내지 못한) EU와 합의하고 영국 하원의 승인을 이끌어내야 한다.


브렉시트 합의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이 장기화하면서 영국 국민이 느끼는 피로감은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좌절감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뉴스 매체와의 접촉을 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University of Oxford) 로이터연구소 (Reuters Institute)가 지난 11일에 공개한 ‘디지털 뉴스에 대한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영국인 35%가 “좀처럼 결론이 안 나고 사람들을 양극화하는 브렉시트 논쟁에 대한 좌절감”을 이유로 뉴스 매체들을 적극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답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일수록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조사를 보면 방송 뉴스의 경우 EU와 합의안 부결 과정을 보도하기 시작한 2018년부터 최근 사이, 뉴스 출처로서의 이용도가 66%에서 71%로 소폭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인쇄 뉴스의 이용도는 36%로 정체된 상태였다. 영국 대중이 브렉시트 정보를 방송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 연구는 뉴스 매체에 대한 영국인의 신뢰도가 2015년 이후 약 11% 가량 감소해왔다고 분석했다. BBC의 경우 영국인들로부터 가장 신뢰를 얻고 있는 뉴스 매체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브렉시트 보도와 관련해 BBC가 지금까지 보인 행보는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에게 비판을 받아왔다. BBC가 EU 탈퇴와 잔류를 주장하는 양쪽의 입장을 균등하게 비춰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받아들여 브렉시트에 대해 비판을 아껴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영국인들이 브렉시트와 떼어놓을 수 없는 포퓰리즘 정치의 위험을 알 기회도 적어졌다. 브렉시트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분명하게 정국을 비판하는 언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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