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왜였을까요?”
KBS 기자 최초로 예능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게 된 배경을 묻자 답변 대신 돌아온 말이었다. “(KBS 직원이라) 회당 출연료 2만원이면 되니까, 제작비 문제가 크지 않았을까요”라는 대답에는 약간의 자조가 묻어났다. 신지혜<사진> 기자는 지난달 29일 끝난 KBS ‘대화의 희열’ 시즌2에 고정 패널로 4개월간 출연했다. 시즌1에 이어 출연한 남성 패널들 사이에 유일한 여성 패널로 합류해 친근한 이미지와 때로 허를 찌르는 질문들로 생기를 더하며 호평을 받았다.
입사 동기인 PD가 처음 출연을 제안했을 땐 마침 비취재부서인 대외정책부에 있었고 업무도 ‘비수기’이긴 했지만 “나가서 말실수라도 했다가 KBS 기자들이 집단으로 욕먹지 않을까 싶어” 저어했다. 부서에서도 난색을 보였다. 그런데 마침 시즌1 방송을 좋게 봤던 선배들이 “기자라는 본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출연을 독려했다.
실제로 장르만 예능으로 바뀌었을 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점에선 기자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진의 요청은 조금 달랐다. “인터뷰하지 말고 대화해주세요.” 질문하고 답을 얻는 데 익숙했던 신 기자에게는 그 요구가 난해하게 느껴졌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은, 몇 번의 촬영이 거듭되고 나서였다. 녹화 현장에서 제작진은 커다란 테이블에 출연자들과 카메라만 남겨놓고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온전히 ‘대화’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루에 7~8시간씩, 4개월간 12명을 깊이 만나고 대화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특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의 만남은 잊지 못한다. 유 이사장은 시즌2 출연자 중 유일한 ‘준정치인’이었다. 제작진은 “너무 기자 같지 않으면 된다”고 했지만, 정치부 기자였던 그가 유 이사장 앞에서 기자라는 직함을 완전히 내려놓기는 힘들었다. “저한테만 장벽이 있는 것 같았어요. (유 이사장이) 유희열씨랑은 워낙 친하고, 김중혁 작가나 다니엘 린데만과도 구면이었거든요. 저만 겉도는 것 같고, 제가 던지는 질문들이 마치 기자로서 평가 대상이 되는 것 같아 힘들었어요.” 잔뜩 긴장한 채로 2~3시간이 지난 뒤에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개인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제야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녹화가 끝날 때쯤엔 거기 있던 모두가 말 그대로 ‘대화의 희열’을 느끼며 잠시 침묵했다. “제가 기자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해서 상대의 말에 집중을 못 했던 거죠. 그렇게 동떨어져 있다가 어느 순간 대화에 합류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 와 있는 것 같았어요. 한계를 살짝 넘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개인적으로 고마운 프로그램입니다.”
예상 답변을 생각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요약 전달하기 급급했던 9년차 방송기자는 이번 경험을 통해 ‘공감’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특히 유희열씨가 시청자의 관점에서 질문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며 기자로서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예의가 있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기자도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야 하는 직업인데, 그동안 리포트 하는 데 급급해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없이 내 기사에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닌가 싶어요.”
‘대화의 희열’에 출연한 모든 게스트들이 “그 어떤 경험도 버릴 게 없다”고 했다더니, 신 기자 역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방송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고, “뉴스보다 훨씬 선명하고 확실한 피드백”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뭔가 남은 것이 있으니, 그의 말대로 “딱 좋다”. “‘알바’ 잘 했다 싶어요. 가문의 영광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