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후일담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행사에서, 마치 혼자 일을 한 것처럼 얼굴 팔리는 일은 곤혹스럽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 첫 방문지 핀란드에서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 헬싱키에 대통령이 오신다고 하니 당연히 교민 사회는 몇 주 전부터 웅성거렸다. 다 합쳐야 삼사백 명밖에 안 되는 교민 사회라, 소문이 안 퍼질 수 없었다. 일손이 부족할 테니, 담당 업무가 없어도 가서 응원이라도 하자며 아내와 의견을 모았다. 서둘러 집 정리를 마치고 로바니에미를 나섰다. 침대칸이 있는 밤 기차에 타자, 아이는 설레어 잠도 안 자며 웃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헬싱키에 도착했다.


이틀 뒤 문 대통령이 싸울리 니니스뙤 핀란드 대통령을 만난다는 날 아침. 아이가 안 입겠다는 한복을 웃옷만 겨우 입히고, 핀란드 대통령궁 근처로 갔다. 차를 끌고 나온 건 실수였다. 이미 통제가 시작된 환영식 장소 인근은 퇴근길 서울 소공동 거리처럼 꽉 막혀 있었다. 시간은 오전 10시. 아내에게 일단 아이를 안고 먼저 뛰어가라고 했다. 운이 좋다면 손이라도 흔들며 인사할 수 있겠지. 나는 주차할 공간을 찾아 차를 돌렸다. 워낙 혼잡한 동네라 반쯤 포기하고 골목에 들어서는데, 정말 기적처럼 차 한 대 들어갈 공간이 나타났다. 주차하고 부리나케 대통령궁 쪽으로 뛰어갔다.


뛰다가 문득, 태극기 하나 흔드는 사람 없으면 어쩌나 싶은 갑작스러운 애국심이 일었다. 저 멀리 기념품 가게 아주머니가 영험한 눈빛을 보냈다. ‘너 이거 필요하지?’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태극기를 스윽 빼주셨다. 나는 옆에 꽂혀 있던 핀란드 국기도 하나 들었다. 얼른 아이를 찾아 손에 태극기를 쥐여줬다. 환영식이 시작될 즈음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양복 남성들. 한국어로 어디서 오셨냐고 묻는다. “북부 지역에 사는 교민입니다. 대통령 오신다고 해서….” 괜스레 말꼬리가 움츠러드는 그때, 앞에 나타난 또 다른 두 여성은 소형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인터뷰해도 되냐고 묻는다.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오셨죠?”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며 9시간 동안 기차 타고 왔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끝인사를 부탁했는데 한다는 말이 “대통령 할아버지, 우리 집에 놀러와요.” 평소 할머니들과 영상 통화할 때 놀러 오란 말을 자주 했는데, 그 순간 이렇게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두 시간쯤 기다린 뒤, 우린 대통령 내외가 점심 약속 장소로 걸어서 이동할 때 손 흔들 기회를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싸울리 니니스뙤 핀란드 대통령 내외가 헬싱키 시청 앞으로 걸어왔다. 문 대통령은 핀란드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민들 쪽으로 왔다. 김정숙 여사도 바쁜 걸음을 잠시 돌려 아이에게 인사했다. 이제 세 살짜리 아이는, 그저 입에 문 사탕에 한껏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뭘 알고 까르르 웃은 건 아니었을 테다.


이렇게 우리가 대통령 내외를 만난 이야기는 청와대 홍보 영상으로 올라왔다. 멋지게 영상에 담긴 모습도 놀랐는데, 실은 의외의 반응들에 더 놀랐다. 혹자는 우리가 미리 ‘섭외’된 대사관 쪽 환영업무 담당자였냐고 물었고, 또 누군가는 청와대 기자단과 연줄이 있는지 등등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청와대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하고 있으니 인연이 없진 않은데, 기차 타고 대통령을 만나는 과정에서 연출은 없었다. 괜한 헛소문이 퍼지는 것이 걱정되어 페이스북에 이야기를 상세히 올리기도 했다. 딱 하나 내가 연출한 것을 꼽자면, 아이에게 평소 입히지 않던 한복을 굳이 입힌 것이랄까. 그마저도 바로 얼마 전, 지인이 주신 한복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미디어는 결국 우연과 선택이 연결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진짜 드러나야 했던 고생은 장근호 대사 대리와 대사관 직원, 또 업무에 투입된 핀란드 한국 교민과 각국 공관에서 온 지원 인력이 다 했다. 뉴스에는 그 사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故 문덕호 주핀란드 한국대사를 떠나보낸 외교부 직원들의 노고도 후일담으로 기록해두고 싶다. 유능하고 따뜻했던 동료이자 상관을 잃은 아픔을 겨우 다잡고 일했을 것이다. 주말을 몇 달씩 반납한 드러나지 않는 숨은 노력까지 가벼운 말로 폄훼할 수는 없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물살이 배를 앞으로 가도록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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