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외압 의혹, 청와대가 먼저 밝혀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지난달 18일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 <태양광...복마전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는 청와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의 발언에서 출발했다. 윤 수석은 방송 사흘 뒤인 지난달 21일 백브리핑을 통해 “보도에 대해 즉각 시정 조치를 요구했지만, (중략) 사흘이 지났는데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윤 수석의 백브리핑 이후 다음날인 22일, 예정됐던 재방송은 전파를 타지 못했다. KBS의 재방송 불방 결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 아직까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윤 수석이 방송 뒤 바로 요구했다는 시정 조치가 재방송 불방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되짚어볼 사례가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외압 논란 사건이다. 이 전 수석은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 의원 측은 재판에서 “단순한 의견 개진이었을 뿐 결과를 강요하는 등으로 방송 편성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없었고, 영향을 미칠 만한 지위나 관계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해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한 방송법 제4조 2항을 무겁게 적용한 것이다. 재판부는 “실제 방송 편성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해도 객관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간섭이 있는 경우에는 이 사건 조항을 위반한 범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의 통화가 실제 KBS 보도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떠나 보도 통제를 시도한 통화 행위 그 자체가 간섭이라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윤 수석은 누구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했는가? 윤 수석이 언급한 시정 조치는 무엇인가? 재방송 불방은 그러한 요구의 반영인가?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청와대가 마치 태양광 사업 복마전의 핵심 배후인 것처럼 묘사한 프로그램이 불편했을 것이다. 실제로 윤 수석은 같은 백브리핑을 통해 “허위 사실에 근거한 보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브리핑이나 보도·해명 자료 등을 통해 반박하거나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것과 언론사 고위 관계자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 내용이 재방송 불방 등 편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면 위법적 상황이다. 윤 수석이 요구한 시정 조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요구 자체가 간섭이며 부당한 행위라는 게 이정현 전 수석 사건의 교훈이다.


윤 수석은 지난달 26일 다시 한 번 백브리핑을 통해 “정상적 절차를 밟아 정정보도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취재 과정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허위 사실이나 취재 부실 등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따져야 한다. 실제로 허위 사실이 있었다면 제작진 역시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취재 부실이나 허위 사실을 이유로 외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외압 논란은 윤 수석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윤 수석은 먼저 누구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했는지부터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윤 수석의 말 대로 “정상적 절차”였다면 숨길 이유도 없다. KBS 역시 예정돼 있던 재방송이 어떤 경위를 통해 불방됐는지 명명백백히 규명해야 한다. 정치권력의 언론 간섭은 더 이상 허용돼선 안 된다. 그렇게 보이는 것조차 언론에 대한 신뢰를 심각히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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