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하겠습니다.” 농담처럼 던지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자 주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가 정말 애를 키우는 거야?’, ‘이직 준비하려는 거야?’ 같은 의문부터 ‘부럽다’, ‘잘 생각했다’ 등의 응원까지. 권용휘 국제신문 기자(9년차)와 이대진 부산일보 기자(11년차)의 육아휴직 선언에 나온 반응들이다.
이들은 각 신문사 편집국에서 나온 ‘아빠 육아휴직 1호’다. 권 기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이 기자는 지난 3월 휴직해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국제신문에선 벌써 2번째 남성 육아휴직자도 등장했다. 남성기자의 육아휴직이 더는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부산지역에서 첫발을 내디딘 3인이 동시 휴직 중인 모습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지난 15일 부산에서 만난 이 기자와 권 기자는 지역 기자사회도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두 기자아빠가 육아휴직을 택한 이유는 여느 기자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어린 자녀를 돌보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다만 남성으로선 처음이었기에 조금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들에게 저는 아빠가 아니라 가끔 와서 맛있는 것 주고 주말에만 놀아주는 사람이더라고요. 계속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양가 부모님이 봐주실 형편도 아니어서 제가 육아휴직을 결심했어요. 당장 휴직하겠다고는 못했지만 지나가는 말로 언젠가 할 거라고 계속 이야기했거든요. 그래서인지 휴직 신청이 흔쾌히 받아들여졌습니다.”(권용휘)
이 기자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육아휴직을 언급하곤 했다. 사내 또래 남자기자들 사이에선 ‘네가 먼저 총대(육아휴직) 메라, 선빵 날려라’ 같은 말도 자주 오갔다.
“1~2년 전부터 다들 하고 싶은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폭탄 돌리기처럼 서로 부추기다가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저희 애들이 가장 크니까 순서상으로 제가 먼저 하는 게 맞겠다 싶어 ‘선빵’을 날렸죠.”(이대진)
7살·4살 두 딸 아빠인 이 기자와 40개월 아들을 둔 권 기자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다.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유치원에 보내고 설거지, 청소, 빨래를 하고 나면 반나절이 훌쩍 지난다. 오후 3시쯤이면 아이들을 데려와 간식을 챙겨 먹이고 놀이터로 나간다. 다시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나면 어느새 한밤중이다.
“아이랑 있다 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휴직 기간에 몸짱이 돼야겠다, 소설을 써볼까, 자격증을 따볼까, 데이터분석 공부를 해볼까 여러 생각이 있었는데 하나도 이루지 못했어요.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네요. 요샌 날짜 구분도 잘 안 되고요. 하하.”(권용휘)
이 기자는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을 글로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육아빠 000일차’로 시작하는 일기를 이틀에 한 번 꼴로 연재한다. 오늘 하루 딸들과 있었던 일, 아빠로서 부족했던 점, 보람, 기쁨 등 크고 작은 일화를 풀어낸다.
“육아빠 일기는 스트레스 해소용이기도 하고 기록용이기도 해요. 나중에 애들이 말 안 들으면 보여주려고요.(웃음) 아빠가 딸들을 위해 뭐라도 했다는 걸 알아줬음 해서요. 아내가 썼던 출산일기를 보니까 엄마와 자식의 애착관계는 엄청 크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못 해준 것 같았어요. 조금이라도 만회해보려고 휴직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이대진)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 시작한 휴직이지만 한 사람으로서, 기자로서도 깨달은 게 많은 시간이었다. 권 기자는 이전보다 사람들을 대하는 데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자신과 똑 닮은 아들과 매일 마주하면서 불쑥불쑥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이 작은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신뢰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쌓아온 취재원처럼 말이다.
권 기자와 이 기자는 각각 1년, 6개월간의 휴직을 마치면 오는 10월과 9월 초 편집국에 복귀한다. 안팎에서 남성기자의 육아휴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 스스로 이미 좋은 선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육아휴직하고 나서 아이와 저희 부부, 셋이 있는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와 닿아요. 1년을 투자한 만큼 지금의 가족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겠죠. 휴직한다고 했을 때 ‘남자가 애를 키우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네, 당연히 아빠도 애를 키워야죠. 기자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니까 분명 지금 경험이 업무에도 도움 될 겁니다.”(권용휘)
“한 선배가 육아휴직이 오히려 커리어를 쌓는 거라며 응원해줬던 게 기억에 남아요. 편집국에 무사히 복귀해서 남성 육아휴직자는 별종이 아니고, 다시 잘 적응해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이미 후임 휴직자도 정해졌어요. 휴직을 고민하는 동료들을 북돋아 주고 격려해주는 게 이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이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