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이해 따라 재단… ‘가짜뉴스’의 진짜 문제

가짜뉴스 용어, 언제부터 만능 무기처럼 쓰였나

김고은 기자 | 2019.08.12 10:21:44

구글 검색창에 ‘가짜뉴스’를 입력하면 약 2500만 건의 검색결과가 나온다. 유튜브에서 검색되는 동영상은 약 12만 건.(8월7일 기준) 가짜뉴스라는 말은 거의 유행어가 됐다. 공론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익숙하게 불리고 쓰인다. 무엇이 가짜뉴스라는 주장도, 가짜뉴스를 검증한다는 콘텐츠도 온라인 세상엔 차고 넘친다.

◇정치 기사서 ‘가짜뉴스’ 가장 많이 언급
주지하다시피,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용어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6년 미국 대선을 전후해서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 대선을 거치며 가짜뉴스 현상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즉 ‘탈(脫)진실’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가짜뉴스’란 용어는 아직 생소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제공하는 뉴스 분석 툴인 빅카인즈로 검색해보니 2016년 한 해 동안 우리 언론에서 ‘가짜뉴스’가 언급된 기사는 70건이었다(54개 언론사 대상). 그러다 2017년 초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다. 2017년 가짜뉴스라는 말이 들어간 언론 기사는 2795건으로 전년 대비 40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리고 2018년엔 4056건으로 다시 1000건 이상 늘었다. 가장 많은 기사가 나온 건 지난해 10월로 한 달간 877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 엄단 방침을 밝히고 국정감사에서도 크게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가짜뉴스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주문하자 정치권에서 논쟁이 일었고, 언론 보도도 따라서 급증했다. 일련의 흐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가짜뉴스에 관한 언론 보도 양상이 정치적 상황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가짜뉴스를 가장 많이 언급한 건 정치 뉴스였다. 2016년 10월부터 2019년 7월까지 가짜뉴스로 검색된 전체 기사 9284건 중 정치 기사는 4259건으로 45.9%를 차지했다.


◇가짜뉴스로 ‘편 가르기’… 매체 신뢰도에도 영향
보도는 많아졌지만, 가짜뉴스를 한 마디로 딱 잘라 정의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허위·조작정보를 기사의 형식을 빌려 의도적으로 배포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하지만 이른바 제도권 언론의 오보를 어떻게 봐야 할지, 단순 실수와 고의성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에 따라 가짜뉴스의 범주도 널 뛰듯 달라진다.


가짜뉴스라는 용어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사용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가짜뉴스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지난 2017년 3월 전국의 성인남녀 108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가짜뉴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조사했다. 당시 응답자의 76.2%(826명)가 가짜뉴스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들 중 40.1%만이 기존 언론사들의 왜곡·과장보도도 가짜뉴스에 해당한다고 했다.


약 2년 뒤인 지난 2월,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언론진흥재단 조사에서 ‘언론보도 중 사실확인 부족으로 생기는 오보’를 가짜뉴스로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메신저 등을 통해 유포되는 속칭 찌라시’(92.5%), ‘뉴스 기사 형식을 띤 조작된 콘텐츠’(92.0%)에 이어 89.6%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이나 조사를 진행한 업체도, 질문의 유형도 다르지만, 기존 언론을 가짜뉴스 생산 주체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양정애 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일반 시민들이 ‘가짜뉴스’라는 용어에서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부분이 ‘뉴스’가 아닌 ‘가짜’라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가짜’라는 말이 항상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여당이 주장하는 가짜뉴스와 야당이 주장하는 가짜뉴스 사이에 교집합은 사실상 없다. 가짜뉴스는 정치권에서 흔히 ‘편 가르기’를 할 때 동원되는 수사다. 언론에 대해서도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선을 긋고, ‘내 편’이 아니면 가짜뉴스라고 몰아세운다. 대표적인 예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CNN, 뉴욕타임스 등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언론을 가리켜 가짜뉴스라고 공격한다. CNN의 무슨 보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됐는지 지적하기보다 CNN 자체를 가짜뉴스로 매도하는 것이다. 어떤 기사나 매체를 가짜뉴스로 부르는 순간, 그 매체의 신뢰도는 하락한다. 미국의 미디어 연구 기관인 포인터연구소(Poynter)가 지난해 8월 소개한 논문에 따르면 가짜뉴스 주장에 노출되는 것이 미디어에 대한 개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며, 진짜 뉴스(real news)를 식별해내는 정확도도 함께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짜뉴스 자체보다 가짜뉴스라는 말의 무기화가 문제”
정치권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가짜뉴스라는 주장을 펼치고, 언론은 이를 단순 전달하거나 확성기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 스스로 가짜뉴스 비판에 앞장서기도 한다. 라디오 청취율 1위를 자랑하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지난 1월부터 ‘가짜뉴스 전담반’이라는 코너를 수요일마다 방송 중이다. “가짜뉴스, 오보들 혹은 의도를 가진 뉴스들을 짚어내겠다”는 게 취지다. 정치인들의 주장이나 유튜브 등에 떠도는 루머뿐 아니라 제도권 언론 보도도 팩트체크 대상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책으로 팩트체크 강화가 곧잘 거론되고, 실제 다수의 언론사에서 팩트체크를 하고 있지만, 〈뉴스공장〉은 검증 대상이 되는 언론 보도와 허위정보를 싸잡아 ‘가짜뉴스’로 부른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해서 팩트체크 대상이 됐고, 그래서 가짜뉴스로 부르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언론이 가짜뉴스의 개념을 단순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면 저널리즘이라는 장(場)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국의 언론 규제 기관인 IMPRESS는 가짜뉴스 자체의 악영향보다 “가짜뉴스라는 용어의 무기화”를 우려한다. 조나단 히우드 IMPRESS 대표는 지난 2017년 ‘웨스트민스터 미디어 포럼’ 연설에서 “가짜뉴스와 나쁜 저널리즘을 혼동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용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 매우 정확해야 하며, 가짜뉴스를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나쁜 저널리즘이나 뉴스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우리가 주관적인 방식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면,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뉴스는 누군가에게 ‘가짜’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섭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 2017년 봄 ‘관훈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뉴스를 진짜와 가짜로 구별하는 행위 자체는 뉴스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언론이 가짜뉴스 현상을 보도할수록, 보도 자체는 다시 가짜뉴스 현상을 구성하고 유지함으로써 언론보도와 가짜뉴스 현상이 맞물리게 된다”며 “언론 스스로 뉴스에 진짜와 가짜가 존재한다는 모순적인 처지에 빠지게 되며, 이는 뉴스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백영민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도 지난 2월 ‘디지털사회’에 쓴 ‘가짜뉴스의 진짜 문제’라는 칼럼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로 인해 ‘뉴스 그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면서 “가짜뉴스의 진짜 문제는 바로 정보의 진실성을 담보하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권위가 소멸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가짜뉴스’라 하지 말고 정확하게 구분해야
임종섭 교수는 “국내외 언론사들이 무비판적으로 유통시키는 가짜뉴스라는 표현 대신에 정확하고 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유럽에선 가짜뉴스란 용어의 사용을 지양하고 대신 disinformation(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 misinformation(실수로 인해 발생한 잘못된 정보), malinformation(유해정보) 등 구체적으로 구분해서 쓰고 있다. 유네스코에서 발간한 〈저널리즘, ‘가짜뉴스’ 그리고 허위정보: 저널리즘 교육과 훈련을 위한 핸드북〉에서도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그 자체로 모순이라며 대신 허위정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포인터연구소는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더 이상 기자들이 생각하는 의미를 전달하지 않으며 지나치게 무기화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역시 세부화된 분류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도 가짜뉴스라는 말을 그만 쓰자고 제안한다. 김 소장은 “원래 ‘fake(페이크)’가 속임수 비슷한 의미인데 이게 ‘가짜뉴스’로 번역되면서 언론사의 오보나 잘못된 주장까지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남발되고 있다”면서 “올바른 보도냐 잘못된 보도냐를 진짜와 가짜로 구분하는 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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