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후보자 '가짜뉴스' 규제 신중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한상혁 변호사를 지명했다. 이효성 위원장이 사임의사를 표명한 지 19일 만이다.


이 위원장은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두고 사퇴했다. 그동안 ‘가짜뉴스’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책을 요구해왔던 정부 여당과 자율규제를 강조했던 이 위원장의 갈등이 사퇴의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한 후보자의 ‘가짜뉴스’ 대응책에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도 한 후보자 내정 소식을 전하며 “건전한 인터넷 문화의 조성과 방송통신 산업의 발전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인터넷 ‘가짜뉴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가짜뉴스’의 해악이 심각하다는 데 동의한다. 정치적 편향과 집단동질성이 극대화하는 디지털 시대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규제는 극히 조심해야 한다.


첫째, ‘가짜뉴스’는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용어다. 초기엔 주로 신문사의 제호를 무단으로 가져와 거짓 기사에 붙이거나 방송사의 화면에 거짓 정보를 교묘히 편집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보와 루머는 물론 상대방의 견해에까지 마구잡이로 사용한다. 오보가 ‘가짜뉴스’라면 모든 언론이 ‘가짜뉴스’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의도된’ 오보가 ‘가짜뉴스’라 해도 그 의도를 누가 어떻게 판별할 수 있겠는가. 잘못된 저널리즘을 비판하는 것과 ‘가짜뉴스’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둘째, 현행법에도 이미 규제 근거 마련돼 있다. 명예훼손과 모욕, 허위사실유포 등은 지금도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 기자들은 물론 최근엔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유튜브의 크리에이터들도 소송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가짜뉴스’에 대한 법적 규제는 자칫 과잉 입법이 될 수 있다. 기존의 법령으로 규제할 수 없는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또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뛰어넘어 ‘가짜뉴스’를 규제함으로써 보호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중요하다. ‘가짜뉴스’ 판별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과잉 입법까지 이뤄진다면 권력 비판은 현저히 위축될 것이다. ‘가짜뉴스’의 범위를 아무리 좁힌다 해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 영역은 줄어든다. 진실인 줄 알았던 정보가 허위일 수도 있고, 허위라고 생각했던 정보가 진실일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든 오랜 시간과 논쟁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야말로 불완전한 인간으로 구성된 민주주의 사회의 건강이다. 자유로운 정보 유통에 정부가 개입하는 ‘가짜뉴스’ 규제는 그런 민주주의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물론 정보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부작용과 정치적으로 양극화한 언론 역시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그러나 섣부른 규제보다는 시민들의 안목을 키우고 거짓 정보를 걸러내는 자율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가짜뉴스’ 규제가 입법이나 행정조처와 같은 겉옷을 입는다 해도 권위주의 정부의 유언비어 차단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지난 12일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문제되는 가짜뉴스와 허위조작 정보는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 밖에 있다”고 말했다. 또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와 극단적 혐오 표현은 규제 대상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의 범주는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만큼이나 명확하지 않다. 자신의 말처럼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 ‘가짜뉴스’ 규제엔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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