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크' 논란과 공연 관람 매너

[스페셜리스트 | 문화] 장일호 시사IN 기자

장일호 시사IN 기자. ‘회전문 돈다’라는 말이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 업계에서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보는 관객을 일컫는 말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상반기에 가장 많이 본 뮤지컬은 약 50회차 중 모두 13번을 봤다. 이처럼 특정 공연에 ‘꽂힐 때’를 대비해 공연비로만 쓸 소액 적금을 미리미리 들어두는 편이다. 물론 모든 작품을 이렇게 보는 것도 아니며, 놀랍게도 내가 특별히 다른 관객보다 많이 보는 편도 아니다.


비슷한 질문을 듣곤 한다. ‘같은 공연’을 보는 일이 지겹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는 연극이나 뮤지컬의 특성을 간과한 말이다. 같은 작품이라도 배우 컨디션이나 조합, 객석 반응에 따라 공연 자체가 미묘하게 달라지곤 한다. 극을 올리기 전 아무리 많은 연습을 거친다 한들 회차가 거듭될수록 극 자체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캐릭터가 정교해지고, 배우들의 합도 정밀해진다. 그렇게 매번 이 시간, 이 장소에서만 느끼고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이 된다. 우리의 반복적인 일상이 사실은 매일 조금씩은 다른 디테일로 채워진 것처럼 말이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한 번 지나간 공연 역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실황을 담은 DVD는커녕 OST조차 나오지 않는 열악한 공연 환경도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에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니 좋아하는 공연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창작자의 의도나 배우의 작품 해석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고 싶어진다.


게임 용어 중 ‘이스터 에그(Easter Egg)’라는 게 있다. 게임 개발자가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재미로 숨겨놓은 메시지나 기능을 뜻하는 말로 실제 게임 플레이와는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연 역시 N차 관람을 하다보면 마치 게임 속 이스터 에그를 찾는 기분이 들곤 한다. 같은 공연이라도 어느 날은 ‘레전드’(여러 요소가 빠짐없이 훌륭하여 특별히 뛰어난 공연)가 될 수도, 어느 날은 ‘레어’(독특한 연기 혹은 실수가 있는 공연)가 되곤 한다.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 그만큼 슬픈 일도 또 없을 테다.


최근 한 소극장에서 ‘관크’(관객과 영단어 크리티컬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로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뜻함) 논란을 일으킨 한 배우가 “몇몇 관객 분들의 그릇된 주인의식과 편협하고 강압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변질된 공연관람 문화”라며 되레 관객을 지적한 일이 있었다. 객석에서 마치 죽은 듯 꼼짝 않고 본다고 해서 ‘시체 관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제 한국 공연 문화가 다소 경직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암전된 극장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는 ‘폰딧불이’가 이제는 몰상식한 행동이 된 것처럼, 대개는 기본 매너에 대한 문제가 관크를 유발한다. 무대 위 배우와 옆자리 관객에 대한 존중은 기본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공연 매너를 암묵적이나마 계속해서 합의하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관객들이 ‘얻어맞는’ 과정이 반복되는 풍경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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