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허위정보

[언론 다시보기]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최근 ‘조작적 허위정보에 대한 언론학 및 컴퓨터 과학적 접근’이라는 포럼에 참석해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언론학자와 컴퓨터 과학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조작적 허위정보에 대한 생각과 대응 방식을 제시하고 상호 협력 방안을 모색해 보는 자리였다. 민주주의 공동체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이 다른 의견을 보여주니 오히려 기존 성향이 더 강해졌다는 분석결과가 제시됐다. 사실 여부 판단의 최종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대량의 정보들을 대상으로 한 허위정보 여부 판단에 있어서 알고리즘이 훨씬 효율적이고 정확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허위정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찾는다는 목적은 같았지만 방법론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접근 방식에 차이는 있었지만 일치하는 면도 있었다. 현재의 허위정보 현상에서 ‘분노’를 핵심 단어로 꼽은 것이었다.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허위정보의 소비 심리로 선택적 노출, 유유상종, 집단 극화, 확증 편향, 인지부조화 등이 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심리로 주목하는 것이 분노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나와는 다른 생각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분노가 지배하면 서로를 인정할 여유를 잃게 된다.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다”라는 사전적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분노는 심리적 저항을 넘어 적극적인 물리적 행위를 포함한 저항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허위정보 생산과 확산, 소비 과정에서 분노가 개입되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는 현상적 진단이다.


현상적 진단과 함께 컴퓨터 과학적 접근에서도 이 분노가 측정되고 있었다. 같은 포럼에서 발표한 카이스트 차미영 교수 연구팀은 트위터 상에서 전파되는 루머(허위 정보)와 비루머(진실 정보)를 수집한 후 이들이 확산되는 패턴을 분석해 오고 있다. 이러한 패턴을 기계에게 학습시킨 후 새로운 정보가 등장해 확산되는 패턴을 분석해 해당 정보가 진실과 거짓에 어디에 더 가까운 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동안 분석된 패턴에서 벗어나는 내용들이 자주 보이고 있어 이를 모아보니 대부분 분노 감정을 보인 내용이었다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이를 분노라는 단어로 범주화했다.


이 분노라는 심리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있어 왔다. 이러한 분노 심리에도 민주주의가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분노를 누군가가 걸러서 중재했기 때문이다. 그 중재를 통해 분노가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어떠한 중재 없이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전달할 수 있게 됐지만, 중재의 역할은 여전하다.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 전달하는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중재의 역할을 해 온 곳이 언론이다. 가끔씩 언론이 중재하기 보다는 분노의 주체가 된 것 같아 약간은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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