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대'와 가까워지는 방법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2017년 봄, 핀란드 전국의 14세 청소년 모두가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We Should All Be Feminists)’였다. 이 책을 고르고 선물한 건 교육문화부. 기본소득 비슷한 차원에서 도서를 주었다거나 하는 오해는 마시라. 그해는 핀란드 독립 100주년이기도 했지만, 성 평등(gender equality)을 위한 그간의 역사와 노력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해이기도 했다. 1906년 핀란드는 여성 참정권과 투표권을 권리로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핀란드 교육문화부는 7만 유로를 들여 성 평등 교육 자료를 학교에 제공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아이들과 청소년이 평등의 의미를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또 교사가 수업에서 이 주제를 다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을 뒀다. 성 평등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비디오 자료와 수업용 자료를 제공하고, 교육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조금 앞선 2015년에는 스웨덴 출판사가 여러 시민단체 후원을 받아 16세 청소년들에게 같은 책을 선물했다. “이 책을 읽고 젠더 문제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바란다”는 취지였다.


앞의 사례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차원의 책 선물이었다면,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선물은 어떤 취지였을까? 지난달 초, 대통령은 청와대 전 직원 500여 명에게 임홍택 작가의 책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했다. 권장 취지는 다음과 같았다.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경험한 젊은 시절, 그러나 지금 우리는 20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책 선물하길 좋아하는 대통령이 순수하게 골랐다지만, 최근 20대 지지율 하락이나 입시 불공정 문제로 인한 불만을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대통령의 책 선물은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청와대 직원뿐만 아니라 여러 공무원이 90년대 생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계기로 삼았을 듯하다. 야근과 ‘꼰대’를 싫어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열중하며, 희생과 충성으로 애쓰는 쪽보다 ‘병맛’과 정직함을 더 좋아하는 이 집단을 이해하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를 규정하고 관찰하느라 건너뛰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다. 북유럽 사회에서 청소년에게 다분히 선언적인 책을 선물한 이유를 한 번만 살펴보자. 핀란드와 스웨덴처럼 성별 기반 불평등과 차별을 많이 없앤 나라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각종 차별로 고통받는다. 그래서 더 자주 이야기하자고 한다. 유리천장을 더 깨고, 성별 임금 차이를 줄여나가며, 언론이 여성 전문가를 더 발굴하고 열악한 조건을 가진 사회 구성원이 목소리 낼 수 있도록 가장 쉬운 것부터 강조한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아디치에 메시지에 주목해 본다.


한국 언론은 다른 성별의 구성원을 동등하고 진솔하게 대하고 있을까? ‘아싸’와 ‘인싸’를 알아듣는 쪽보다는, 이들의 성 인지 감수성을 배우는 쪽이 90년생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너무 어려운가. 만약 누군가 전지적 능력으로 나를 바꿔 준다면, 90년생으로 나이를 바꾸기보다 페미니스트로 만들어달라고 하자. 살이 쪘느니 마느니 하는 농담을 애정이라 착각하진 않을 것이고, 여성 면접자에게 임신 계획을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리 급한 취재라 해도, 늦은 밤 여성 혼자 사는 집 앞 뻗치기를 근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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