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지역 KBS 활성화 방안'… 지역국 죽이기인가 기우인가

노조·지역사회서 비판 목소리

KBS의 지역국 기능 조정 방안과 관련해 “지역방송 말살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전남도민행동, 전남시민단체연대회의가 지난달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KBS 목포·순천 등 지역방송국 폐지계획 철회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KBS가 지역국 기능조정을 골자로 한 지역 방송 활성화 정책에 대해 1차 의견수렴을 마치고 세부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KBS는 지난달 8일부터 20일까지 7개 지역국을 돌면서 직원과 시청자위원,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같은 달 28일 이사회에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조만간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 노동조합과의 합의 또는 협의를 거쳐 추진 방안을 확정하고, 추가 설명회 등을 통해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역 순회 설명회가 일단락된 뒤에도 일부 노조와 지역 시민단체, 의회 등에서 “지역방송 말살 정책”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어 실행에 옮기기까지 상당한 고비가 예상된다.


KBS의 지역 방송 활성화 정책이란 지난 7월 공개된 비상경영계획안에 포함된 것으로, 정확히는 ‘지역방송국 광역거점센터 육성 방안’을 의미한다. KBS 지역방송국은 광역시 등을 중심으로 포진한 9개 지역총국과 중소도시에 있는 9개 지역국(을지국) 체제로 나뉜다. KBS는 이들 9개 총국과 강릉, 울산방송국을 11개 광역거점센터로 운영하고 나머지 7개(목포·순천·안동·원주·진주·충주·포항) 지역국의 기능은 총국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다. 지역국의 방송, 기술, 총무 업무 일부를 총국으로 통합해 뉴스 제작과 송출을 총국 중심으로 운영하고, 지역국에는 기존 라디오 방송제작과 수신료, 문화사업, 교육 업무 기능만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KBS는 “지역의 자율적인 편성과 제작, 그리고 리소스 운용 권한 확대”라고 기본 방향을 설명한다. 즉 지역국의 인력과 예산을 총국으로 집중해 지역의 보도 기능은 총국을 중심으로 강화하고, 지역국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하면서 지역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노조와 지역 시민사회 등에서 “지역국 폐쇄”라며 반발하는 것은 ‘기시감’ 때문이다. KBS는 정연주 사장 시절인 지난 2004년 9개 총국 16개 지역국을 현행 9개 총국 9개 지역국으로 정비하는 지역방송국 통폐합을 단행했다. 감사원의 권고 사항에 따른 것이었고, ‘지역방송의 로컬 서비스 확대와 지역 프로그램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후폭풍은 컸다. 지역민을 위한 문화센터 역할 확대 등 노사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구조조정이 된 지역국은 이후 차례로 매각되거나 철거됐다. ‘지역 방송 활성화’를 내세운 이번 광역거점센터 육성 방안을 두고도 각계에서 비판과 불신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기능 조정 대상이 된 7개 지역국에선 정치권,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통폐합 반대 기자회견, 항의 성명 등이 이어지고 있고, 일부 지역에선 ‘수신료 거부’ 선언까지 나오고 있다.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KBS는 지난 6일 발행된 사보를 통해 “지역국 폐쇄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역 뉴스가 축소되거나 홀대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도 “보도 인력을 총국에서 운용하더라도 현재의 지역국 관할에서 여전히 취재 활동이 이뤄진다”며 “지역국 관할 지역의 뉴스 분량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쿼터제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역 뉴스 의무할당제 같은 지역 방송 활성화 방안은 현행 시스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게 아니냐며, 지역국 기능 조정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통상 5~10분 정도 방송되는 로컬뉴스를 40분간 자체 편성해 주목을 받은 KBS제주총국의 실험을 오는 11월부터 전 총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KBS제주는 지난해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 4월부터 〈7시 오늘 제주〉란 지역뉴스 프로그램을 주 4회 편성 중인데, 이를 위해 KBS 본사에서 기자 인력 충원과 연 5억원의 예산을 지원한 바 있다. 그러나 11월부터 전 총국에서 〈7시 오늘 제주〉 형식을 주 1회 방송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인력 충원과 예산 편성 계획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KBS 지역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기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고, 해야 한다는 당위만 있으니 사측도 설득할 카드가 없고 지역 구성원들도 선뜻 동의해줄 수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장 노조는 물론이고 지역의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큰 상황에서 국정감사 등을 앞둔 KBS가 민감한 지역방송 정책을 원안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영한 KBS 지역정책실장은 “지역국 간담회를 통해, 정확하지 않은 지역정책 방안들이 사내외에 유포되면서 지역사회와 직원들의 걱정이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향후 또 한 번의 설명회 과정을 통해 회사 지역정책을 정확하게 알리고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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