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의 음서는 관직을 세습하는 제도였지만, 온전한 세습은 아니었다. 음서로 얻는 것은 하급 관료가 고작이었기에 능력이 부족하면 한직을 떠돌다 물러나야 했다. 고려 시대 권력 세습의 진짜 핵심은 수조권을 세습할 수 있는 공음전이었다. 대죄를 짓지 않는 이상 수조권을 빼앗기지 않았기에, 유서 깊은 명문 가문은 끊임없이 부를 불려 나갈 수 있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부부는 딸에게 명문학교 출신이라는 학벌과 의사라는 상류층 지위를 물려주려 했다. 인맥으로 의학 논문의 제1저자를 만들어주고, 대학 총장 표창장을 안겼다. 일반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기회를 활용한 것은 명백하며, ‘조로남불’이라는 비판도 자초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이 계급 세습을 대표하는 것처럼 부각되는 상황에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조국 장관이 물려준 것은 의학전문대학원 합격증 하나다. 일종의 음서지만 조 장관이 가진 학문적 성취와 명성이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는 없다. 더욱 확실하게 계급을 세습하는 집단은 따로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절대권력, 편법으로 전이되는 공음전, 바로 자본이다.
진정으로 세습되는 계급은 재벌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미 3대 세습을 완료했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세습도 완성단계다. 이들은 또 다른 세습 계급인 언론과 힘을 합쳐 그 자리를 공고히 한다. 우리나라 보수 언론재벌의 대표는 모두 설립자의 자손이다. 조 장관의 딸은 아버지가 가진 것보다 못한 것을 물려받았지만, 언론과 재벌은 권력 전체를 물려준다. 두 세습 계급은 혼맥으로 이어져 있다. 최강의 세습 권력 둘이 일가가 되어 서로 부족한 곳을 채운다. 경제 권력이 광고로 언론사를 밀어주고, 언론 권력이 보도로 재벌을 지원한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 등은 실질적으로 거액의 탈세를 동반했다. 그런데도 세습 언론은 이들을 크게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옹호하기도 했다. 총수가 감옥에 가면 경제에 해를 끼친다며 사법체계를 비난한다. 그사이 대한민국은 억만장자 중 세습 부자 비율이 70%를 넘는 극단적 정체 사회가 되어버렸다.
조 장관이 딸에게 학벌을 편법으로 물려준 것을 비난하는 사이, 더한 것을 물려주고 있는 사람들은 그 뒤에 숨는다. 언론재벌은 앞장서서 조국 일가 비판에 열을 올리고, 세습 재벌의 행위는 축소해 보도한다. 대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액수가 크게 늘어난 판결을 내렸지만, 조국 보도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음서와 공음전은 고려를 망국으로 끌고 간 제도들이었다. 공음전을 방치하고 음서만을 끊임없이 비난한다면 이는 이상한 일이다. 조 장관 비판에 매몰되어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사회에서 언론과 재벌의 폐단을 개혁하기는 불가능하다. 권력의 크기도, 세습의 확실성도, 사회에 미치는 해악도 훨씬 큰 언론과 재벌은 조국 일가의 학벌 세습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이때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우리 언론이 ‘예비언론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요? 이 칼럼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이 번갈아가며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