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용 배상 논란과 문명국가의 과제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왕선택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북한학 박사

왕선택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 지난해 10월 대법원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은 우려했던 대로 심대한 후폭풍을 만들어냈다. 지난 7월 이후 한국과 일본의 외교, 무역 분쟁을 유발했고, 이후 한국과 미국의 외교 충돌로 비화됐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미국과 일본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서 오히려 미, 일과 충돌하는 장면은 한국 외교 역량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 외교 차원에서라도 한미 동맹 정상화, 한일 관계 수습에 나서야 하고, 이를 위해 근본 문제인 강제 징용 배상 문제 해결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 과제는 파문을 수습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품격 문명국가라면 사태 수습과 더불어 해당 문제에서 확인된 역사적 교훈을 현실에 적용함으로써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강제 징용 논란과 관련한 교훈은 무엇인가? 강제 징용 논란의 본질적 성격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라는 점에 유의한다면 해답은 저절로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런 것이 있었다면 시정하는 노력과 더불어 예방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강제 징용 문제를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로 보는 것은 유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한국인 특유의 감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상식에 부합하는 접근법이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협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 국내에서도 한국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이 생겨날 수 있다. 반대로 과거 식민지 경험에 불만을 품은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보복한다는 인상이 확산하면 국제 사회는 한국과 일본 모두를 외면할 것이고, 일본은 반성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한국과 일본의 감정 대립 국면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와 연계하는 방법을 채택했을 때 한국 주장이 반영된 사례가 많았다. 2007년 미국 연방의회의 위안부 결의 채택 과정에서 당초 한일 대결로 알려졌을 때는 미국 사회의 호응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인류 보편적 가치인 전시 여성 인권 문제로 다루면서 미국 정치권은 삽시간에 한국 요구에 호응했다. 2014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동해 병기 운동이 전개됐을 때도 한일 간 다툼이 아니라, 지리 교육 차원의 문제로 접근한 결과 미국 사회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므로 강제 징용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스스로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보장하는 노력을 전개하고, 그런 맥락 속에서 일본에 대해서도 보편적인 인권 기준에 부응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오직 한일 관계 맥락에서, 일본 규탄에만 집중한다면 앞으로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대한민국도 과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야만 국가와 다르지 않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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