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빈그룹의 '국뽕' 전략, 통할까

[글로벌 리포트 | 베트남]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 빈그룹(Vingroup)을 보면서 한국 대기업들을 떠올린다. 호텔, 골프장, 리조트, 아파트 같은 부동산 사업을 시작으로 유통, 의료, 항공 등 ‘문어발식’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이나 자동차, 휴대폰과 같은 첨단, 종합산업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모습에서 한국 대기업들의 과거 모습을 떠올린다.


베트남 국민들은 그런 빈그룹에 열광한다. 손대는 사업마다 척척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며 빈그룹을 베트남의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빈그룹이 베트남 경제성장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감추지 않는다. 취업 시장에서도 빈그룹은 일찌감치 청년들의 취업 희망 1순위 기업에 자리매김했다. ‘빈그룹 근무=애국’으로까지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국민들의 이런 기대와 열망을 업고 빈그룹은 지난해 ‘베트남 500대 기업(VNR500)’ 중 6위에 오르기도 했다. 베트남 민간기업으로 10위권 첫 진입이었다.


빈그룹의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까지 나쁘지 않았다. 빈그룹은 BMW, GM, 보쉬 등 글로벌 업체들의 도움으로 자동차 생산계열사 빈패스트를 2017년 9월 설립했다. 국민들은 고유 자동차 브랜드를 갖게 됐다는 소식에 열광했고, 빈패스트 차량 출시 때까지 자동차 구매를 미루겠다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빈패스트 공장이 올 초 완공되고, 지난 6월 중순부터 생산된 제품이 시중에 나오기 시작하자 그 같은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우선, 관련 뉴스(영문)가 싹 사라지고 빈패스트에 등을 돌리고 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이라는 것이다. 1인당 소득(GDP) 2700달러 수준의 나라지만, 이미 수입 자동차에 길든 소비자들이다. 동급 수입차보다 월등히 비싼 가격, 끊이지 않는 제품 하자 소식 영향이 제일 크다. 출시 석 달이 지났지만, 길거리에서 빈패스트 차를 구경하기란 쉽지 않다.


빈패스트는 고객들로부터 1만 대를 주문받았다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을 뿐, 공식적인 판매 대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석 달 째다. 생산 첫해에 25만대의 차량을 판매한다는 계획을 내세웠는데, 그 계획이 실현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해 베트남 승용차 판매 대수는 27만대 수준이다.


천문학적 금액을 투입해서 만든 차가 팔리지 않으니 빈패스트는 물론, 빈그룹은 비상이 걸렸다. 작년 말 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빈그룹 신용등급을 ‘B+’에 투자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도 투자전망을 ‘부정적’으로 강등시켰다. 여전히 채권 발행은 가능한 등급이지만 빈그룹이 대내외적으로 받는 부담은 한층 커지게 됐다.


이 와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애국주의 마케팅’이다. 중앙·지방 정부를 상대로 교체 시기가 다가온 차량을 새로 구입할 때 빈패스트 차량을 구매해달라는 요청이 대표적이다. 베트남의 전체 관용차 규모는 3만9000대 수준으로, 지난 2017년 1081대의 차량 구매에 1조동(약 512억원)의 비용을 지출했다.


빈패스트는 또 차량호출서비스 업체 ‘패스트고’와 협력하기로 했는데, 이 회사에 소속된 기사가 소형 차량(Fadil)을 구매할 경우 차량 가격의 20%만 내면 인도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 기사들에게는 빈그룹의 쇼핑몰, 리조트, 학교, 병원에서 나오는 손님들을 우선으로 태울 수 있는 배타적 권리까지 부여했다. 승객들에게는 요금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다른 나라였다면 경쟁 당국으로부터 한 소리 들었을 법한 수준의 혜택들이지만, 이곳에서는 그 누구 하나 시비를 따지지 않는다. 빈패스트가 ‘베트남 국민에 의한, 베트남 국민을 위한’ 차 생산을 위해 설립된 만큼 어떤 식으로든 궤도에 올라야 한다는 공감대가 그 배경에 있다. 2018년 역내 상품 관세가 철폐되면서 더 저렴하고 품질 좋은 자동차들이 베트남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국민들의 애국심에 기댄 빈그룹의 전략이 어디까지 먹힐지, 많은 이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