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부끄러웠으니, 당신도 조금은 부끄러웠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책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펴낸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남성인 당신도 그러길 바란다.’ 박정훈<사진> 오마이뉴스 기자가 최근 펴낸 책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던 적이 많았다면서 ‘나도 부끄러웠으니, 당신도 조금은 부끄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진 특권과 부당 이익, 또 여성의 희생과 고통을 기반으로 한 남성의 평온함을 반성하고 성찰하자는 게 책의 주된 내용이다.


남성인 박 기자가 상대적으로 성 평등에 민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창 시절부터의 페미니즘 공부가 한 몫을 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이었다. 박 기자는 “함께 고스트 스테이션을 듣는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는데, 아무래도 신해철이라는 인물 자체가 진보적이다 보니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좀 있었다”면서 “그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페미니즘이 평등을 지향하는, 혹은 사회를 좀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2015년 이전까지 페미니즘은 그에게 ‘깨어 있는 남자’라고 자부할 수 있는 치장용 도구에 그쳤다고 박 기자는 고백했다. 2015년 메갈리아의 탄생, 남성의 언어를 그대로 되받아치는 ‘미러링’ 문화의 태동 등 ‘페미니즘 리부트’를 마주하며 그는 자신의 페미니즘도 ‘업데이트’ 해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우연찮게 그 해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박 기자는 수많은 페미니즘 이슈를 다룰 수 있었고 동시에 자신이 여성을 향한 폭력을 묵인·방조해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박 기자는 “그때부터 나에게 페미니즘은 반성과 연대였다”며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나도 가해자였음을 인정하고, 남성 문화를 내부에서 고발하며 함께 성찰하고 변화하자는 메시지를 꾸준히 냈다. 기사로 미처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를 2016년부터 SNS 등을 통해서 써왔고, 올해 4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 그 글들을 엮어 책을 내게 된 것”이라고 했다.


물론 누군가는 남성이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 역시 한계를 인정한다. 다만 박 기자는 “남성을 설득하는 주체가 남성인 건 나쁘지 않다”면서 “그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알기에 그렇다. 되도록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 흐름에 조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의 목표는 그와 생각이 반대인 집단에서 단 한 명의 남성이라도 그의 글을 읽고 설득당하는 것이다.


박 기자는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언론 역시 동참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언론이 여성 대상 범죄에서 피해자 신상을 특정하며 2차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 기자는 “옛날보다는 확실히 페미니즘 관련 보도가 늘어났고 남성 문화에 경각심을 가진 기사도 많아졌다”며 “그러나 아직도 성폭력 이슈를 자극적으로 다루는 기조는 여전하다. 성폭력 전문기자를 육성하는 한편 가해자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담은 따옴표 저널리즘, 2차 피해와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어뷰징 기사는 기자협회에 속한 매체만이라도 자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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