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기후변화

[글로벌 리포트 | 캐나다] 김희원 한국일보 부장

김희원 한국일보 부장. 9월 마지막 주 밴쿠버 지역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들 상당수는 이색적인 공지를 했다. 교사, 학장 등이 학생들에게 9월27일 금요일로 예정된 시위에 학교를 빼먹고 참여해도 좋다고 알리며 사실상 참여를 독려했다. 밴쿠버와 서리 지역은 교육청 차원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고, 에밀리 카 예술대학교는 아예 전체 수업을 휴강했다. 이날의 시위는 바로 ‘기후 파업(Climate Strike)’이었다.


기후 파업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기성 세대의 책임을 물으며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시위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매주 금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여왔다. 툰베리의 시위가 관심을 모으며 스웨덴 내, 그리고 세계 각국으로 금요일 시위(Friday for Future)가 확산됐고, 지난달 27일 몬트리올의 기후 파업에 툰베리가 참석키로 하면서 캐나다 전역이 그에 부응한 것이다. 툰베리는 그 직전인 2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해 짧은 연설을 했다. 세계 정상들을 향해 ‘여러분은 헛된 말로 나의 어린 시절과 꿈을 빼앗았다. 여러분이 실망시킨다면 미래 세대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즉시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달 27일 밴쿠버 도심에서 열린 기후 파업에선 실제로 10대 학생들,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자녀들이 눈에 띄었다. 밴쿠버 시청 앞에서 시작된 시위 행렬은 도심을 돌아 밴쿠버중앙도서관 앞에 다다랐고, 메가폰을 잡은 연설자들은 “지구를 지키는 정당에 투표하라”고 외쳤다. 툰베리가 온 몬트리올 기후 파업에는 30만명이나 참가하는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캐나다는 오는 21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최근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교사 시절 갈색 분장 사진이 공개돼 나라가 들썩이고 지지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이슈는 기후변화다. 지난 선거에서 트뤼도의 자유당은 소수자 권익 옹호, 기후변화 이슈를 내걸고 집권에 성공했다. 집권 이후 화석연료 에너지 기업에 탄소세를 매기고 거둔 세금을 국민에게 환급해 주는 강력한 탄소세 제도를 도입했고, 2021년부터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키로 하는 등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책을 실행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2050년까지 캐나다를 ‘탄소배출 제로(0)’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공약을 내걸었다. 탄소 제로 목표 역시 구체적 로드맵 없이 ‘재집권 하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실행안을 만들겠다’는 수준이어서 구호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산업분야별로 목표 달성이 가능한지를 점검하는 기사가 나오고, 국민들로 하여금 2050년에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을지 생각게 한다.


캐나다 정부의 행보는 이웃나라 미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인구 1인당 탄소배출량이 2, 3번째로 많다. 캐나다가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자 하면서 이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표심을 잡으려 하는 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이후 노골적으로 온실가스 저감 노력을 팽개쳐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툰베리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았다. 두 나라의 상반된 분위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후 파업에 어린 학생들의 등을 떠미는 캐나다 유권자들이 없었다면 분명 ‘탄소 제로’ 공약이나 탄소세 도입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트뤼도 총리에 대한 거친 비판은 정부 대응이 너무 미흡하다고 하는 녹색당과 환경단체 등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은 캐나다에 이어 세계 4번째다. 어른들이 미래 세대의 꿈을 앗아가고 있다는 툰베리에게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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