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도 더 지난 '아웅산 테러' 다시 파헤치는 이유는…"

[인터뷰] 책 '1983 버마' 펴낸 강진욱 연합뉴스 기자

강진욱 연합뉴스 기자는 자신의 저서 ‘1983 버마’에서 북한 소행으로 결론이 난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뀌고, 나라 이름도 미얀마로 바뀐 버마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새삼 파헤치는 이유가 있을까.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이 일어난 그해,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을 졸업한 1987년 KAL 858편 실종 사건(일명 김현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대학 분위기는 광주 학살을 저지른 전두환과 그 정권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죠. 그 시대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지금도 유전자처럼 육신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진욱 연합뉴스 기자는 자신이 펴낸 ‘1983 버마’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공식 결론이 난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책들을 보면 볼수록 의혹이 커졌다고 한다. 하나같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지만 저마다 뭔가를 숨기거나 감추고 있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돈 오버도퍼의 ‘두 개의 코리아’, 사건 당시 안기부장 노신영씨가 쓴 ‘노신영 회고록’ 등을 통해 당시 미국이 버마행 비행기 항로를 변경한 사실을 알게 됐고, 지난 2013년 전후로 쏟아져 나온 ‘역사의 빛과 그림자’(장세동), ‘아웅산 다시보기’(박창석),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라종일), ‘나의 이야기’(송영식) 등을 보면서 사건의 내막에 접근하게 됐다”고 했다.


각각의 책 속에 들어 있는 사실들을 종합하고 이를 사건의 시말에 얽힌 갖가지 의문점이나 의혹과 대조해 나갔다. 버마의 역사와 버마 군부에 관한 영문 책자들, 1980년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관한 책들, 사건 당시 전두환 정권의 비동맹외교, 한반도 주변 정세와 남북 관계 및 북미관계 관련 자료 등을 꼼꼼히 살피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갔다.


그는 그간의 공식 결론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아웅산 묘소 테러를 미국과 전두환 정권이 벌인 자작극, 즉 북한의 소행을 가장해 치밀하게 기획된 ‘대북 공작’이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레이건 정권이 들어선 뒤 미·일·한 3국 동맹체가 구축돼 소련과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모는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사건을 벌인 목적은 한때 비동맹운동의 일원이던 버마가 ‘형제국’처럼 여기던 북한을 내치고, 결과적으로 비동맹회의나 유엔무대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었죠. 이 목적은 상당 부분 달성됐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팩트와 정황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음모론이 아니냐’는 지적에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확인된 팩트와 정황, 당시의 정세 및 여러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통시적이고 공시적으로 교차 검증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4년 전, 갑작스레 충남 홍성 주재 기자로 발령이 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편집국에서 떨려났는데, 다시 무연고지로 쫓겨나니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기자 이름으로 책 한 권 남겨야겠다 싶었고, 그렇게 ‘1983 버마’를 썼다. 지금은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마이더스’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36년이나 지난 사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일본에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북한이 하지 않은 것을 북한이 했다고 우기는 것은 일본이 징용과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것과 같죠. 이런 끔찍한 사건을 북한이 저질렀다고 여기면서 남북 화해가 가능할까요. 극우 또는 보수 진영에서 극도의 반북 적대감을 발산하며 정부의 대북화해정책에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이유는 바로 ‘나쁜 북한’이 ‘착한 남한’을 해치려 했다는 잘못된 세뇌 때문입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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