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와 언론의 길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논평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921년 창간 100주년 기념사에서 언론의 핵심 가치를 천명했다. 주류에 맞서 위기를 겪던 시대, 저널리즘의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고 있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언론의 보도는 이 가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사실과 의견의 혼재, 진영의 정파성을 앞세운 외눈박이 보도, 세대 갈등으로 포장한 편가르기 보도가 언론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져 “검찰 개혁”과 “조국 파면”을 외치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 갈수록 심해졌다. 시민들은 언론을 향해서도 불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묻고 있다. 사실을 가리지 말고 진실보도를 해달라고. 진영 논리에 눈먼 일부 누리꾼은 시민들의 불신을 이용해 드러난 사실에도 눈을 감은 채 언론을 매도하고 있다. 정치적 계산이 진실을 가리고 있다.


그래도 돌아보자. 언론은 조국 보도에서 자유로운가. 출발은 ‘공정’의 문제였다. 조국 장관을 둘러싼 의혹 중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킨 인화점은 자녀 입시였다. 고등학생이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되고, 부모의 스펙을 이용해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고학력 스펙을 쌓은 행태에 분노했다. 그 언론의 보도가 높게 평가받은 이유도 ‘사실 취재’에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의견과 진영 논리가 사실에 앞서지 않았다. 시민들은 기다렸다. 최소한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이 적절한 조치를 내릴 것으로 생각했다. 임명 그리고 검찰의 대대적 압수수색 이후, 공정의 문제는 ‘검찰의 공정’으로 옮겨 붙었다. 검찰이 언론에 수사 기밀을 흘리고, 언론은 검찰발 보도를 받아쓰며 의혹이 사실로 둔갑했다. 정보를 쥔 검찰이 언론을 등에 업고, 심판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뛰며 문제가 복잡해졌다. 언론도 보도 초기 보였던 사실 취재를 통한 의혹 확인이 무뎌졌다.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리고, 언론이 단독 경쟁을 하며 검찰 말이 곧 정의가 되어버렸다. 언론과 검찰이 늘 해왔듯,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문제를 확대재생산했다. 검찰은 손에 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버텼고, 언론은 검찰을 견제하지 못했다. 보수 진영은 검찰을 응원했고, 진보 진영은 검찰 개혁 촛불을 들었다. 언론은 도매금으로 적폐로 몰렸다.


그래도 돌아보자. 권력 감시자로서 언론이 ‘조국 사태’에서 그 권한을 무소불위로 휘두르고 있지 않았는지. 본질적 문제와 무관한 망신주기, ‘마녀사냥’식 보도를 흘리지는 않았는지. 이런 보도는 특정 이념에 휩싸인 정치적 이익집단에겐 선동의 도구로 좋은 먹잇감이다. 루머가 사실로 둔갑하며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언론의 보도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 그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 진보언론인 ‘한겨레’가 처한 딜레마는 저널리즘의 기본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조국 의혹이 쏟아지는데도 침묵하며 외면하는 모습에서 한겨레를 지지하던 독자들은 실망했다.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을 표방한 한겨레가 취재한 기사를 보고 싶은 독자들은 다른 언론의 ‘창’을 통해 답답함을 풀어야 했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에 앞서 “사실은 신성하다”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망각한 보도 태도가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이 많다. 지지층의 이해와 다르지만 취재한 사실이 옳다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하면, 언론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


‘조국 사태’가 진영 대결로 치달으며 언론의 책임 있는 보도가 더 중요해졌다. 갈수록 사실보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보도가 늘어나고 있다. 경계해야 한다. 증거와 팩트에 근거한 저널리즘의 보도 원칙을 다시 돌아봐야 할 때다. 의견은 자유지만, 사실은 무엇보다 신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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