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 정국과 언론의 과제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 조사로 미국 정가와 언론이 연일 시끄럽다. ‘탄핵’이란 단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내 ‘연관 검색어’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취임 초기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타진하는 서적이 줄을 이었고, 러시아와의 대선 공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탄핵 카드’는 늘 민주당의 손 닿을 곳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줄곧 탄핵에 부정적이었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입장을 바꿔 탄핵조사에 돌입했다는 점이 다르고, 그동안 소극적이던 여론이 탄핵 쪽으로 모이고 있다는 것 또한 다르다.


펠로시 의장은 나라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는 명분 하에 탄핵에 미온적이었다. 그 이면에는 미국 헌법이 규정하는 탄핵 절차가 만만치 않아 실현가능성이 낮은데다, 성사된다고 해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권력 승계로 민주당에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과정에서 오히려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펠로시 의장이 탄핵을 주저해온 이유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미국 역사에서 탄핵안 의결이 진행된 경우는 두 차례 뿐이고, 탄핵된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다. 1868년 앤드루 존슨,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의안이 하원에서 통과됐지만 상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하원의 표결 직전 스스로 물러났다. 공화당이 우세한 현재의 상원에서 존슨, 클린턴 대통령의 전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 탄핵 과정에서 민주당이 오히려 역풍을 맞거나 트럼프 지지층의 결속만 도모할 수 있으리라는 시나리오 역시 전례에 비추어봤을 때 개연성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펠로시 의장이 입장을 선회한 것은 이번 ‘우크라이나 스캔들’에는 이러한 우려들을 압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표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당내 탄핵 찬성 여론이 폭발했다. 여기에 내부고발자의 설득력 있는 제보 또한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가 나왔을 때까지도 미온적이던 여론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탄핵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탄핵 찬성 여론은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론의 압박이 심할 경우 탄핵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 닉슨 대통령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알아서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펠로시 의장 입장에서 탄핵은 더 이상 피할 수도 없지만 동시에 해볼만 한 게임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툭 하면 불거지던 각종 논란에도 꿈쩍 않던 여론은 왜 갑자기 탄핵 쪽으로 무게가 실리게 되었을까. 진보성향의 언론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는 물론, 최근 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 여론조사에서조차도 응답자의 과반이 탄핵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안이 복잡하고 수사의 결론조차 모호했던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과 달리,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남용 행위가 매우 명확해 국민들이 쉽게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하지만 현재는 간단하고 명료해보이는 ‘우크라이나 스캔들’도 복잡한 사건으로 진화할지 모를 일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조차 “정치가 물리학보다 어렵다”고 말했다는 일화처럼, 일반 국민이 정치적 이슈와 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날마다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각종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정보의 옥석을 가리고 사안을 명확히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언론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국민의 선택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는 올바른 선택을 위한 필요조건이고, 언론은 이들이 정치를 배우고 경험하는 주요 통로다. 탄핵안을 의결하는 것은 의회의 일이지만, 이 과정을 정확하게 보도해 미국민들이 내년 대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언론의 과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오리무중인 탄핵 정국, 언론의 올바른 의제 설정이 여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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