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가 지난 1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언론의 무분별한 사생활 보도로 고통받아 온 피해자였다. 설리의 사망 전날인 지난 13일을 기준으로 1년 동안 네이버에 ‘설리’ 키워드를 검색하자 나온 기사는 1만3396건이고 설리의 사망 보도가 처음 나온 지난 14일부터 현재(22일 기준) 기사량은 7412건이었다. 사망 이후에도 언론 보도가 쏟아진 가운데, 고인의 생전부터 죽음 이후까지 언론들이 비윤리적 보도 행태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악성 댓글이 극단적 선택을 한 연예인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으로 거론됐지만, 이번 고인의 사망은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악플을 언론이 그대로 기사로 실어나르면서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하고 또 다른 악플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6일 <악플과 중계식 보도 ‘가학의 악순환’> 기사를 통해 문제가 되는 보도 관행을 분석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빅카인즈를 통해 설리의 사생활 기사와 악성 댓글이 어떻게 재생산돼 왔는지 살펴봤다”며 “연예매체를 제외하고 중앙일간지, 경제지, 지역종합지, 방송사 등 54개 매체를 분석한 결과 지난 1년간 설리와 관련한 기사는 1666건이었다. 기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로는 ‘악플’과 함께 ‘인스타그램’ 등 사생활과 관련한 단어가 꼽혔다”고 보도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1일 낸 신문방송 모니터에서 “언론사 기사 댓글은 악성 댓글이 활개 치는 대표적인 공간 중 하나이고, 악플을 받은 당사자가 언론 보도들을 모니터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악성 댓글을 접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지적했다.
연예인 본인의 자기 의사 표현과 SNS 사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논란’으로 명명해 보도하는 것도 같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고인이 SNS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노브라’ 사진을 올리고 ‘00씨’라고 연예계 선배 호칭을 불렀다는 이유 등으로 언론은 고인을 온갖 논란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SNS에 올라온 사진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4월17일 서울신문 <만취 라이브 논란 이후 설리 근황 ‘당당한 노브라’>, 5월23일 중앙일보 <설리, ‘성민씨 호칭 논란’ 지적 팬 호소문에 “많이 억울했어?”>, 5월24일 한국일보 <설리, 유아인과 남다른 친분 과시…또 이슈-논란 되나?>, 7월11일 세계일보 <화사·설리가 촉발한 ‘노브라’ 논란, 노브라 보는 남녀 시선은?>, 지난달 30일 동아닷컴 <설리, SNS 라이브 방송 중 노출 사고…이틀째 논란> 등이다.
설리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비윤리적 보도도 여전했다. 유명인들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트래픽용 기사로 소비하거나 불필요한 속보 경쟁을 하는 등 유명인 자살 보도 문제가 계속 이어져 오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지난 14일 “연예인 설리 사망 신고 접수...확인 중”을 1보로 보도했다. 경찰의 사망 확인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신고가 접수됐다는 것만을 보도해 만약 오보였다면 자칫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팩트 등은 고인의 자택으로 몰려가 고인의 시신 운반 과정을 모자이크 처리해 사진에 담기도 했다.
자극적인 내용과 제목의 기사도 양산됐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동으로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보도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일보, 서울신문, 헤럴드경제 등은 고인이 살아있을 당시 신체 노출 논란이라며 자극적으로 보도됐던 사진을 사용해 비판을 받았다. 특히 국민일보는 같은 기사의 앞머리에 ‘노브라를 주창해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들 언론사는 이후 사진을 변경하고 내용을 수정했다.
이번 사안은 여성 유명인에게만 유독 가혹한 언론이 성찰해야 한다는 함의를 던졌다. 최이숙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 관행이 이어지다보니 설리의 ‘노브라’ 발언 등이 소비되는 맥락을 성찰하고 진단하기보다는 웹 상에 존재하는 관음증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무책임하고 여과 없이 내보낸 것”이라며 “미투 운동 이후 몇몇 언론을 제외하고 언론 대부분은 여전히 한국의 젠더 갈등을 성찰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논란이나 갈등으로 프레임을 짜고 선정적인 제목을 달면 기사 클릭수가 올라가는 이런 상황에서 혐오가 장사가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것”이라며 “여성 연예인이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이야기는 아무렇게나 클릭수를 위한 기사로 소비해도 된다는 인식과 일종의 스캔들이나 사건으로 접근하는 방식들이 더욱더 커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