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도 넷플릭스가 될 수 있을까

[글로벌 리포트 | 영국]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BBC의 온라인 서비스가 출범 후 최대 규모로 확장된다. 기존 서비스 기간을 30일에서 1년까지 확대하고 상업방송사인 ITV와 공동으로 영국 콘텐츠를 전문으로 한 가입제 서비스 ‘브릭박스’의 영국 내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BBC를 감독하는 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 승인도 지난 8월 초에 이미 떨어졌다.


BBC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인 아이플레이어는 5년 전만 해도 영국 시장에서 40%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선전을 거두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최근 몇 년간 인기를 끌면서 올해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를 기록했다. BBC가 공공연하게 넷플릭스를 거론하며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장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내년 5월에는 아동 수용자를 겨냥한 디즈니의 ‘디즈니 플러스’나 애플 이용자들의 활발한 이용이 예상되는 ‘애플 TV’까지 영국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라 BBC가 느끼는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지난 7일, 토니 홀 BBC 사장은 디즈니나 애플과 같은 미국발 주자들이 새롭게 시장에 합류하면 시장 구조가 재편될 수 있다며 BBC 역시 지지 않고 이들을 상대로 경쟁할 계획이라 밝혔다. 가격 경쟁력도 고려해 베타서비스 중인 ‘브릿박스’의 가격을 넷플릭스 최저가인 5.99파운드와 동일하게 책정했다. 새로 시장에 들어오는 디즈니와 애플이 각각 5.40파운드와 4파운드로, 더 저렴한 가격을 책정할 것으로 알려져 최종 결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는 있다.


BBC 측은 이번 온라인 서비스 확장에 대해 대중의 큰 호응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콘텐츠국의 샬롯 무어 국장은 “역사상 최초로 영국의 텔레비전이 수용자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모든 걸 하나의 서비스에 모았다”며 이번에 확장되는 온라인 서비스의 가장 큰 경쟁력을 영국산 TV 콘텐츠에 대한 “완전한 체험이 될 것”이라 정의했다.


이는 평소 BBC가 수신료로 조달되는 재원모델을 정당화하며 영국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드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다른 상업서비스가 만들 수 없는 영국의 다양한 지역의 가치와 문화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영국의 창조적인 인력들에게 기회를 줘 국가사업인 창조산업의 육성에 공헌했다는 것. 이 주장이 1년에 약 23만원이 넘는 수신료(154.50파운드)를 내는 수신료 납부자들도 설득해왔다.


지난 8월, 오프콤이 BBC의 온라인 서비스 확장안을 승인하면서 밝힌 결정적 이유도 세계 수용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영국의 몇 안되는 고유한 브랜드로서 BBC가 가진 공적 가치를 온라인 서비스까지 확장하겠다는 주장에 공감해서다. “이번 결정이 공공서비스방송의 이용 가능성을 높이고 시청 행태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BBC의 현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코멘트가 뒤이어 발표됐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시청 행태가 되면서 ‘넷플릭스에 밀리는 지상파 TV의 위기’는 비단 영국에서만 논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BBC처럼 온라인 서비스의 사상 최대 개편이나 상업 방송과 합작한 가입제 형태의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출범하는 적극적인 시도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큰 돈이 들기 때문이다.


지상파 송출 후에 이뤄지는 온라인 서비스의 기간을 늘리려면 그만큼 제작사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이전에는 미주 지역을 대상으로 했던 브릿박스의 서비스를 영국으로까지 확장하려면 수많은 인력과 물리적인 서비스 기반의 확충이 필요해진다. ITV와 합작한 서비스라도 BBC 측에 부담이 안 될 리 없다.


전문가들은 시청 행태에서 온라인 서비스 이용이 보편화 되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넷플릭스와 달리 영국 대중을 주대상으로 하는 BBC의 경우, 그러한 변화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수치로 확인될 수 있다. 정부와 수신료 협상에 따라 그 지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역시 미래를 낙관할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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