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2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언론사들은 둘로 나뉘었다. 정 교수의 얼굴을 모자이크나 블러(blur·흐리게 하기) 처리한 매체, 정 교수의 사진을 그대로 드러낸 매체 이렇게 두 종류다. 일각에선 얼굴을 바로 알아볼 수 없도록 한 매체들을 두고 '피의자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선 자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 특혜를 줬다'며 비판했다.
형사피의자의 얼굴 공개와 관련해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이 있다. 구속력은 없다. 준칙은 '헌법 제27조의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피의자, 피고인 및 피해자, 제보자, 고소·고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는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는다(제2장 제2조)'고 규정한다. 공인(公人)이 아닌 개인의 얼굴과 신상 정보 등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을 공개할 경우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가 전제된다. 인권 보호를 위해서다.
참고로 검찰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서 '공적(公的) 인물'의 범위는 전현직 △고위 공직자(차관급 이상 입법부·사법부·행정부·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감사원 소속 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의회 의장, 교육감, 치안감급 이상 경찰공무원, 지방국세청장 이상 국세청 소속 공무원, 대통령실 비서관 이상 대통령실 소속 공무원) △정당의 대표, 최고위원급 정치인 △대규모 공공기관장 △금융기관장 △자산총액 1조원 이상의 기업 대표 등이다. 기준대로라면 정 교수는 공인이 아닌 셈이다.
이날 언론사들은 정 교수를 공인으로 볼지 갈림길에 섰다. 사회적 주목을 받은 인물은 맞다. 그러나 그의 얼굴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인지, 공개된 사실이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지, 이미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공개된 공적 활동에 관한 사진을 사용하는 것인지, 대상자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정도의 긴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대상 인물이 대중 노출을 전제로 한 활동을 업으로 하고 있는지, 자신의 초상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볼 근거가 있는지. 고민 끝에 상당수 회사는 모자이크를 선택했다. 공인이 아닌 일반인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준칙대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왜 비아냥이 날아드는 것인지, 언론은 아프게 들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관행'에 비추어 이례적인 게 사실이라서다. 기존 미디어에게 '공인'이란 그 행위, 인격에 대하여 공중의 관심을 가지게 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공론의 장에 나선 전면적 공인은 언론의 비판을 수인할 의무가 있고 그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서 극복해야 한다"며, 그의 얼굴은 무차별적인 공개의 대상이 됐다. 당시 공적 인물의 범위에 속하는지 불분명했던 국정농단 사건의 최순실, 정유라도 얼굴 공개를 피하지 못했다. 누가 언론을 상대로 맞설 것인가. 심판자의 오만이었다.
이젠 누구나 알고 있다. 국민의 주된 관심사건의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선 경우라도, 반드시 얼굴을 공개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법정에서 일반인의 초상권은 이미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국민은 자신의 권리찾기를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수사보도에선 언론사 스스로 공적 인물에 대한 기준을 세워 철저히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준칙을 지킨다면 그것도 좋다. 특정 인물이 논의의 발판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더라도 해야할 터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