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정보통제 발상 위험하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무분별한 피의 사실 공표는 법에 명시된 무죄 추정의 원칙을 훼손하고, 재판도 받기 전에 피의자에게 범죄자 낙인을 찍었다. 검찰은 피의 사실을 흘려 ‘망신주기식 수사’와 ‘여론재판’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끌고 가곤 했다. 10년 전 ‘논두렁 시계’는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법무부가 기소 전에 수사상황 등 피의사실 공개를 금지하고 공개소환과 포토라인을 폐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 훈령)을 내놓은 배경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이런 취지와 달리 법무부 훈령은 “피의자 인권을 명분으로 모든 정보를 통제하겠다는 발상”, “검찰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도 잇따라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총 35조로 구성된 이 훈령은 몇몇 독소조항이 눈에 띈다. ‘검사와 수사관은 담당 형사사건과 관련해 기자 등 언론기관 종사자와 개별적으로 접촉할 수 없다’는 19조는 취재 자유를 사실상 박탈하고 있다. 훈령이 시행되면 기자는 검사나 검찰 수사관을 일체 만날 수 없고 전문공보관이 불러주는 것만 써야 한다. 검찰 발표를 받아쓰기만 하라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없던 5공화국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저는 그 사건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으며, 공보 업무 담당자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는 기자 응대 방법도 훈령(19조2항)에 포함됐다.


‘검찰청의 장은 사건 관계인, 검사, 수사업무 종사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오보를 한 기자 등에 대해 검찰청 출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33조2항은 검찰이 언론을 통제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오보를 낸 기자나 언론사는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오보 기준이 모호하고 오보 여부 판단도 불분명해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법무부나 검찰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는 오보로 낙인찍고 취재를 막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국기자협회는 성명에서 “법무부의 자의적 판단으로 정부에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해 출입제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오보 언론사 출입 제한’은 현행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 있는 조항이지만 사실상 사문화됐고, 더구나 법무부가 마련한 초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법무부 훈령 제정 과정의 절차적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는 올 4월부터 TF를 구성해 초안을 마련한 뒤 언론, 대한변협, 경찰,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지만 ‘내용이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납득할 수 없다’는 한국기자협회의 의견은 묵살했다. 대한변협도 “법무부와 협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언론사 법조팀장들이 지난 1일 김오수 법무장관 권한대행을 만났다. 법조팀장들은 훈령 제정의 절차·내용상 문제 등을 담은 의견을 전달하고 오보 언론사 출입 제한 등 독소조항 폐지를 논의할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김 권한대행은 이번 주까지 회신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재 법무부에서 오보 대응과 관련해 나오고 있는 개혁안에 대해서는 아마 앞으로 좀 더 논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반발을 모면하기 위한 ‘립 서비스’로 끝나면 곤란하다.


법무부는 이번 훈령을 철회하거나 공개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문제가 된 독소조항들을 바로잡는 게 옳다. 언론 또한 검찰 정보에 의존해 기사를 쓰거나 피해자의 목소리에 눈감고 검찰 주장만 받아쓰지 않았는지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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