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자취는 기원전 17세기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왕이 공표한 함무라비 법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세계 최초의 성문법전에는 재산의 기탁 외에도 기탁된 재산의 운용이나 그에 따른 이자에 대한 규정까지 명시돼 있다. 최초의 근대 은행은 네덜란드 상인인 요한 팔름스트루흐가 1657년 스웨덴에 설립한 ‘스톡홀름스 방코’다. 단순하게 금이나 은 등을 보관하는 기능을 넘어 예금과 대출을 선보였다. 단기로 예금을 받아 장기 대출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대출을 승인하면서 예금 상환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어음 발행을 남발했다. 그 결과 은행은 1667년 문을 닫았고, 최초의 은행 설립자 팔름스트루흐는 투옥됐다.
그로부터 300여년이 흐른 지금 이번엔 은행산업의 몰락이 예고됐다. 테크핀으로 상징되는 기술의 공습 때문이다. 카카오뱅크가 출범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1000만 고객을 유치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1일 금융 계열사 ‘네이버파이낸셜’을 출범시켰다. 단순히 결제와 송금을 넘어 주식, 보험, 예·적금, 신용카드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 금융 플랫폼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가운데 하나의 은행 앱으로 모든 은행 거래가 가능한 ‘오픈뱅킹’이 지난달 30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12월 핀테크 기업들이 오픈뱅킹 서비스에 참여하게 되면 디지털금융의 무한 경쟁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전망이다.
핀테크(FinTech)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핀테크 시대엔 은행 등 금융회사에 IT가 금융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이는 ‘촉진자’ 역할을 했다. 테크핀(TechFin)은 IT(정보기술) 업체가 주도하는 기술에 금융을 접목한 개념이다. 테크핀 시대에 IT는 ‘파괴적 혁신자’다.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중개기능을 파괴하고, 신기술 기반의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씨티그룹은 “은행가들이 미래에 대해 걱정해야 할 것은 핀테크가 아니라 인터넷 기반 플랫폼 회사들에 의한 빅테크(Big Tech)의 진입”이라고 했다.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기술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객을 바탕으로 지급결제나 금융거래에 나서는 경우다. 카카오와 네이버의 금융시장 진출은 국내에서 빅테크의 공습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은행과 빅테크 간 금융 대전에서 누가 탈락할 것인지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필요한 것은 은행서비스이지 은행이 아니기 때문”(빌 게이츠)이다. “씨티은행의 최대 라이벌은 체이스맨해튼은행이 아니라 IBM”(윌터 리스턴 전 씨티은행 회장), “은행 지점과 종업원들은 향후 10년 이내에 50%까지 감소할 것”(안토니 젠킨스 전 바클레이즈 CEO) 등 경고가 쏟아진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은행들의 혁신은 구호에 그쳤다. 라이선스(인가)란 갑옷을 입고 예대마진에 안주해온 시중은행들이 스톡홀름스 방코의 전철을 밟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