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대통령의 좌충우돌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극우 성향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의 관행을 벗어난 파격적인 ‘사이다 행보’가 지지자들에게 신선한 정치문법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지나치게 거침없고 직설적인 언행은 빈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2019년 첫날 우파 정상들의 축하 속에 취임했다.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등이 취임식에 직접 참석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대신 보내면서 “미국은 당신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소셜미디어(SNS)에 남겼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보우소나루의 등장으로 남미에서 ‘우파 돌풍’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그런 표현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경직되고 독단적인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수시로 드러내는 그로 인해 오히려 정국은 갈수록 혼돈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보우소나루의 돌출 행보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FTA) 도미노’를 선언한 보우소나루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차원의 무역협상을 서둘렀고, 유럽연합(EU)과 FTA 체결에 합의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아르헨티나 대선이 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의 승리로 끝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보호주의를 앞세울 것으로 보이는 페르난데스의 당선으로 FTA 체결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아르헨티나가 최악의 선택을 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페르난데스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조차 전하지 않았고 취임식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차기 정권이 시장개방을 반대하면 메르코수르에서 축출하겠다는 협박성 발언도 했다. FTA 협상이 뜻대로 진전되지 않으면 브라질이 메르코수르를 탈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밖에 좌파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볼리비아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어깃장을 놓는가 하면, 우루과이 대선 결선투표를 앞두고 중도우파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가 당사자로부터 거부당하기도 했다. 내정간섭 논란 속에 자칫 ‘남미의 밉상’이 될 판이다. 이를 두고 “국제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정상적인 정부”라는 비판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내정치 문제에서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재 하원에 의석을 보유한 정당은 27개이고, 이 가운데 확실한 여당 역할을 해온 정당은 사회자유당(PSL) 1개뿐이다. 보우소나루는 당 운영방식과 전략, 내년 지방선거 후보 공천 등을 둘러싸고 사회자유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당적 변경·무소속 활동·창당설 등이 난무하고 있다.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수행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당적 변경과 창당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가민주연합(UDN)·애국당(PATRI) 등 우파 또는 극우정당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보우소나루가 군 장교 출신답게 아예 국가방위당(PDN)이나 브라질군부당(PMB)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만들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당적 변경이든 창당이든 이런 일이 현실화하면 정치권의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권이 좌-우파로 나뉘어 ‘강 대 강’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중도 진영의 목소리는 그만큼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모자라 최근에는 셋째 아들인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 하원의원까지 강성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사회자유당의 하원 원내대표인 에두아르두 의원은 좌파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면서 과거 군사독재정권(1964∼1985년)의 좌파 탄압 정책을 두둔하는 발언을 SNS에 쏟아냈다. 좌파 야당들은 일제히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면서 하원 윤리위원회에 제명을 촉구했다. 오는 15일은 브라질에서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대통령 직선제 투표가 시행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 없이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들은 보우소나루 대통령 부자의 언행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치 상황이 30여년 전으로 후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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