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베트남이 주목되는 이유

[글로벌 리포트 | 베트남]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정민승 한국일보 호찌민특파원. 지난 4일 저녁 태국 방콕 임팩트컨벤션센터 국제미디어센터. 아세안정상회의 폐막식이 진행되던 행사장에 실시간으로 전송돼 온 장면 하나에 미디어센터 한쪽에 있던 수십명의 기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태국의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에게 의사봉을 넘기고, 푹 총리가 그 의사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장면이었다. 차기 의장국, 베트남의 임기가 시작되기까지는 두 달 가까운 시간이 남았지만 사실상 아세안의 힘이 차기 의장국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기사 송고를 마친 30~40명 규모의 베트남 기자들은 다시 한자리에 시끌벅적 모였다.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뒤에서야 미디어센터를 떴다. 남아 있던 이들의 화제는 그 요란했던 베트남 기자들에게 쏠렸는데, ‘애국심 충만한 기자들’이라는 평가와 함께 ‘의장국이 뭐길래’, ‘기대되는 2020년’ 등의 반응들이 나왔다. 투표로 뽑는 의장국도 아니고, 아세안 10개 회원국이 알파벳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맡는 타이틀 하나에 무슨 호들갑인가 싶지만, 베트남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베트남이 처한 대외 상황. 1975년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물리치며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확보한 베트남은 현재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큰 도전을 받고 있다. 국제분쟁을 중재하는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지난 2016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내린 첫 중재 결정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판결 이후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되레 커진 상황이다. 소송을 제기한 필리핀마저 중국을 향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은 자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중국의 해양탐사선과 해안경비정들이 등장하자 이들을 상대로 최근까지 3개월 동안 ‘사활’을 건 대담한 대치 상황을 이어왔다.


이런 베트남이 내년 한 해 아세안을 이끄는 동안 중국을 상대로 펼칠 싸움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게 아세안 각국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2020년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아세안에도 중요한(critical)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는 곳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98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로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 베트남은 내년부터 2년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활동을 시작한다. 베트남의 유엔 비상임이사국은 2008~2009년에 이은 두 번째로, 193표 중 192표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지난 6월 선출됐다.


베트남의 2020년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는 또 있다. 내년은 5년마다 치르는 선거 직전의 해다. 2021년 초 열리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체제의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안정적으로 계속 끌고 가기 위해서는 성과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7%대 성장이 점쳐지는 등 경제적으로는 최대의 성적을 쌓고 있는 베트남은 스포츠분야에서도 박항서 감독 계약 연장을 통해 사상 첫 월드컵 지역예선 통과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GDP) 2600달러에, 인구 1000명당 자동차 수 30대 수준에 불과한 나라지만 F1 그랑프리대회도 개최하는 등 상승하는 국력을 과시할 다수의 이벤트들이 2020년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베트남의 모든 대형 일정과 이벤트들이 선거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베트남은 중국과 지금까지 각을 세우면서 그 상대로 ‘중국’이라는 이름을 한번도 직접 거론한 적이 없다. ‘관련국’, ‘당사국’으로 칭했을 뿐이다. 하지만 내년 아세안 의장국과 유엔 이사국이라는 양 날개를 단 뒤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하기 어렵다. 그날 밤 베트남 기자들의 그 환호와 결기 넘쳤던 구호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 위에 가장 강력한 외교력을 갖게 되는 ‘2020년 베트남’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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