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총선, 분열의 신호탄일까

[글로벌 리포트 | 캐나다] 김희원 한국일보 부장

김희원 한국일보 부장. 지난달 21일 캐나다 총선이 분열주의의 종을 울린 것일까? 비록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자유당이 재집권에는 성공했지만, 캐나다 동·서부를 선명하게 가르고 있는 정당별 득표현황과 퀘벡 분리독립을 주장해 온 블록퀘벡당의 급부상은 캐나다 분열의 시대를 알리는 것처럼 보인다.


총선에서 157명(총 338명 중 46.5%)의 의원을 배출한 자유당은 의석 과반 달성에 실패한 소수 집권당이 되었다. 사상 최고의 승리였던 2015년 총선 때(184명 당선)보다 당선자 수가 27명이나 적을 뿐만 아니라, 전국 득표율(33.07%)은 보수당(34.41%)보다 오히려 낮았다. 선거결과로 나타난 표심은 살펴볼수록 심각하다. 캐나다 서·중부인 알버타주, 서스캐처원주에서 자유당은 한 명도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전멸했다. 기존 내각의 장관 2명도 낙선자에 포함됐다.


알버타주, 서스캐처원주는 신민주당 의원 1명을 제외하고는 보수당에 몰표를 줬다. 121석(35.8%)을 확보한 보수당은 2개 주와 인접 지역을 온통 파랗게 물들였다. 총선 직후 ‘서부 분리독립’을 뜻하는 웩시트(Wexit)라는 말이 급부상한 배경이다. 실질적인 분리독립 운동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지역에서 정부여당을 향한 분노와 소외감은 실체가 분명하다. 석유산업 근거지인 알버타주에서는 탄소세 도입, 송유관 확장 관련 규제 등 트뤼도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들이 지역 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반감이 적지 않게 축적돼 왔다.


사실 트뤼도 총리는 알버타주의 숙원사업인 송유관 확장건설에 찬성해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정책들과 모순을 일으키는 것은 어쩌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송유관 사업 찬성-반대측 양쪽에서 다 비판을 받았다. 리버럴한 성향이 강한 서부 태평양 연안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유권자들은 알버타주 유권자와는 정반대 이유로 트뤼도 총리에게 실망감을 드러냈다. ‘트뤼도가 기업 편이고 기후변화 대책에 소극적’이라며 더 진보적인 신민당과 녹색당에 표를 던졌다.


이런 와중에 블록퀘벡당은 놀라운 선전을 거뒀다. 선거 전 10석에 불과했던 의석 수를 무려 32석(9.5%)으로 늘려 신민주당(24석, 7.1%)을 제치고 제3당에 올라섰다.


이런 상황에서 트뤼도 총리는 연정을 꾸려 의석 과반을 형성하는 대신, 사안에 따라 협력할 당을 찾는 각개격파의 길을 택했다. 그는 “어떤 공식적 비공식적 연정파트너도 없다”고 밝혔다. 대신 그는 첫 시험대가 될 12월5일 국회 개회 연설을 앞두고 각 당 대표와 차례로 회동을 가졌다. ‘Speech from the Throne’으로 불리는 국회 개회 연설은 영국 여왕을 대리하는 총독 앞에서 새 정부의 주요 정책을 설명하는 것으로, 소수당이 집권할 경우 연설 후 투표를 통해 국회 신임을 물을 수 있다. 트뤼도 총리는 신민당과는 주거문제 해결, 전국적 약보험제도 수립, 블록퀘벡당과는 기후변화 대책, 물가 안정, 총기 규제 등에 대한 협력을 모색했다. 보수당과도 중산층 확대와 물가안정에 대해 협의했다.


국회 과반 의석을 만드는 것보다 분명 복잡하고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정당과 손을 잡아도 보수화와 웩시트, 퀘벡 분리독립, 진보적 요구 등을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수 집권당에게는 힘의 균형과 견제를 이용하는 것만이 국민 다수의 합의를 끌어낼 길이다.


트뤼도 총리가 이 줄타기를 얼마나 잘 해내고 국가분열의 위기를 극복해 낼지는 지켜봐야 한다. 어쨌거나 줄타기가 가능한 것은 각 정당의 이념과 정책이 일관되고 뚜렷하기 때문이다. 신민당은 이념적으로 정반대에 있는 보수당과의 협력은 절대 없다고 공언했고, 기후변화 대책에 적극 찬성하는 블록퀘벡당은 보수당의 ‘웩시트’ 목소리에 “석유국가를 세우려는 거라면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여당, 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당론을 뒤집고 어떤 당과도 합종연횡이 가능한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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