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주역은 누구인가. 이 근본적 질문이 2019년 12월 현재, 유령처럼 한 언론사를 배회하고 있다. 디지털화 최전선에 스스로를 던진 중앙일보 이야기다. 우리의 오늘의 이 비판이 디지털을 위한 중앙일보의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분명히 밝혀둔다. 그 반대다. 디지털화를 위한 중앙일보의 노력이 한국 언론 전체에 던지는 울림이 크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언론사의 주역은 기자다. 기사를 발굴하고 취재하고 쓰고 출고하는 기자들은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언론사가 혁신을 꾀할 경우 그 주인공도 기자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디지털화 전략에선 기자가 배제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다수의 경로로 들려온다.
중앙일보는 지난 5일 편집국을 둘로 갈랐다. 법인 분할을 공식화하면서다. 홍정도 대표이사 사장이 이날 개최한 ‘내일 컨퍼런스’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신문제작을 담당하는 ‘중앙일보A’와 디지털 콘텐츠 생산을 맡는 ‘중앙일보M’으로 나뉜다. 향후 분사를 향한 밑그림이라는 점은 사측도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그러나 해당 이야기를 5일이 돼서야 처음 통보 받았다. 기자 조직 중에선 극소수의 임원급만이 관련 논의 진행 과정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우려의 핵심은 한 가지로 수렴된다. 회사의 명운, 나아가 기자들의 운명을 건 디지털화에 정작 기자들이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지난달 중앙일보 노보 1면 제목이 <무성한 소문, 커지는 냉소…회사는 조합원 불안에 답해야>였을까. 5일 이전까지 일선 기자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외부에서 나도는 소문에 의존해야 했다. 그나마 중앙일보 사측이 일선 기자들을 위해 설명회를 개최한 것도 내일 컨퍼런스가 개최된 후인 9일 오전이었다.
이번 발표에서 수익 모델이 제시되지 않은 점에도 우리는 주목한다. 디지털화의 핵심은 수익 모델 찾기다. 거대 포털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선 기자와 사측이 함께 머리를 맞대도 지혜가 모자랄 판이다. 수익 창출 모델에 대한 혁신적 아이디어 없이 조직 개편안만 수 년째 내놓고 있는 상황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기자들을 장기판의 말로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장기판 자체를 바꾸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 아닐까.
수년 간의 크고 작은 디지털 혁신 조치로 중앙일보 일선 기자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한 상태라는 건 더 이상 뉴스도 못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를 디지털화의 수동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건 기자들의 체념만 더할 뿐이다. 이는 디지털화의 동력을 스스로 꺼뜨리는 처사에 다름 아니다.
중앙일보의 성공을 가장 바라는 이들은 다름 아닌 그 소속 기자들이다. 디지털화의 십자가를 앞서서 짊어진 중앙일보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매한가지다. 중앙일보가 해내는 성공과 맞이하는 좌절은 곧 한국 언론사의 디지털 역사가 될 수 있어서다. 그 점에서 중앙일보의 디지털 전략을 한 편으론 응원하면서도 비판을 안 할 수가 없다. 기자의 목소리와 수익화 모델 구상, 그 핵심 두 가지가 빠진 디지털 전략은 공허한 울림일 뿐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디지털화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사주인 A.G. 설즈버거의 말(10월21일자 타임지 인터뷰)을 되새겨본다. “가장 중요한 건 저널리즘이다. 뉴욕타임스를 혁신하기 위한 중요하고 용기있는 조치들은 편집국의 힘을 최우선 순위로 놓아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이 이뤄냈다.” 중앙일보 편집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