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어 성 중립 인칭대명사와 '포용 국가'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핸’(hän)은 핀란드에서 왔습니다. 커피와 사우나를 좋아하고, 겨울 날씨를 잘 견딥니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일할 때는 성실하고 놀 때는 열정적입니다. 그는 다재다능합니다. 선생님이기도 하고, 기자로도 일하며, 때로는 청소를, 때로는 요리를 하며 생계를 꾸립니다. 직함과 이름도 많죠. 핀란드 전 대통령 따르야 할로넨이기도 하고, 현 대통령 싸울리 니니스뙤이기도 합니다. 곧 34살 나이로 핀란드 연립 정부를 이끌게 될 세계 최연소 총리 싼나 마린(Sanna Marin)이자, 동성 파트너와 함께 마린 총리를 키워낸 싱글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핸’은 어린이고, 청소년이고, 할머니입니다. 피부색이 검거나 머리가 노랗고, 대머리이거나 빨간 머리일 수도 있습니다. 아내이거나 남편, 혹은 파트너일 수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일 수도, 난민 신청자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핀란드가 고향인 이 친구의 이름은 ‘핸’. 정확한 발음은 조금 어렵습니다. 혀끝을 아랫니 뒤쪽에 붙이고 살짝 미소 짓는 입 모양으로 한(han)을 발음하면 비슷합니다. 한국어로 “걔가 말했어”라고 할 때의 모음에 가깝습니다. 국제음성기호(IPA)를 사용해 [’hæn]이라고 적을 수도 있겠네요.


핀란드어 ‘핸’은 성 중립 인칭대명사(gender-neutral personal pronoun)입니다. 이런 성 중립 대명사가 핀란드어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400여 개 언어를 살핀 어느 연구에 따르면 핀노-우그릭, 시노-티베탄,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여러 말에서 성 중립 대명사를 찾을 수 있다고 해요. 핀란드어 핸(hän)이 처음 인쇄물에 등장한 건 1543년 핀란드어 알파벳 책이었지만, 입말에서는 그 전부터 쓰였습니다. 19세기까지는 동물을 부를 때도 사용했다고 해요. 몇 년 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그(he)나 그녀(she) 대신 쓰자고 권유한 ‘ze’와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겠군요.


핀란드 정부는 ‘핸’을 소개하는 캠페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핀란드가 평등 관점에서 완벽한 국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젠더, 인종, 민족, 장애를 이유로 생기는 차별이 핀란드 여성과 소수자들에 의해 겉으로 드러났다는 점을 인식합니다. 성별이나 사회적 상황에 무관하게 누군가를 부를 수 있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일이 좋은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알고, 대표하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핸은 포용적인(inclusive) 핀란드어 인칭대명사입니다.”(다음 웹사이트에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http://finland.fi/han/)


포용이라는 단어, 한국 언론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죠.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포용 국가’는 실질적으로 누구를 포용하고,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이야기일까요? 한국 여러 언론이 핀란드 총리에 주목하고 있는 김에, 그의 조건 하나하나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상황인지도 살펴보면 어떨까요. 전 총리 사임에 이어 사회민주당을 이끌게 된 34세 교통통신부 장관, 합법적 동성 파트너를 둔 엄마의 ‘레인보우 패밀리’에서 성장한 딸, 27세에 지역 의회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청년 정치인이자 갓 태어난 아이의 엄마.


“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2012년 12월13일, 민주통합당 종교특위 기자회견) “(청년들이) 정치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 자기 분야에서 업적을 쌓고 성공하고 인정받은 후에 그걸 발판으로 들어와야 한다.”(2017년 9월21일, SBS CNBC 제정임의 문답쇼) 차기 대한민국 총리 물망에 오른 70대 정치인께서 그간 해오신 ‘노오력’은 과연 포용에 어울리는지. 핀란드 총리 뉴스에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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