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경향신문에 실릴 예정이던 한 기업에 대한 기사가 해당 기업의 요청으로 제작과정에서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는 지난달 22일 성명을 발표하고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경향신문지회는 “경영난과 정부의 견제,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오직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감시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외부로 솔직하게 공개하고 사과드리는 것이 독자 여러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사 사장과 광고국장, 편집국장은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다.
경향신문지회는 “독립언론 경향신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등을 다짐했다. 불미스러운 ‘기사 거래’를 먼저 외부에 공개하고 솔직하게 사과한 경향신문지회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공정과 정확한 보도를 생명으로 삼는 언론이 자본에 좌지우지된다면 그 존재 의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많은 언론들이 기업 협찬과 광고 수익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가면서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축소·수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져 왔다. 경영자와 편집국장의 경우 ‘광고주’인 기업의 이해관계와 언론의 가치 속에서 연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면 선을 넘거나 실족하는 일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언젠가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기업의 협찬과 광고비를 대가로 제목을 고치거나, 기사의 비중을 축소하거나, 기사의 톤을 수정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이뤄져 왔다. 특히 광고비 비중이 높은 대기업에 관한 기사라면 더욱 그랬다. 2012년 4월 언론계에 충격을 준 한국일보 편집국장 해임 건을 떠올려보자. 한국일보는 2011년 11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유용한 정황을 포착, 이를 단독 보도했다. 하지만 회사는 단독으로 기업 비리를 보도한 기자와 편집국을 응원하기는커녕, ‘광고 매출 부진’을 이유로 후속보도에 개입하더니 결국 편집국장을 경질했다.
크고 작은 기사 수정과 축소가 일상적으로 수면 아래서 이뤄졌다면, 줄타기 끝에 균형을 잃고 ‘편집권 독립’이란 선을 넘어버리는 일이 수면 위로 터져나왔다. 오늘의 위기는 사실 신문과 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들이 기업 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수익구조에서 별다른 대안을 찾기 못하면서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수입의 기업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기사에 대한 수정·축소 요구가 이뤄진다면 기자들, 편집국장들의 머리 속에는 ‘기업’이란 검열자가 들어설 수밖에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수익구조로 언론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언론은 지금이라도 기업에 대한 의존도, 자본 종속도를 낮추기 위한 자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뉴미디어의 출현과 미디어의 다변화,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 축소 등으로 기존 언론이 가진 매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장 손쉬운 수익원에만 손을 벌린다면 이 같은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일은 쉽지 않다. 포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기사 유료화도 쉽지 않다. 후원금 모델 등을 일부 언론에서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언론사를 유지할 만한 수입원이 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언론이 ‘서서히 가라앉는 배’가 되지 않으려면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시도에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경향신문 사태를 계기로 언론의 내부를 점검하고 성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