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상이 더 나빠져 간다고 말하지만 알고보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할 때가 많다. 가짜뉴스 논란 같은 것도 그렇다. ‘검찰발 가짜뉴스’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는 오늘이다. 국가기관인 검찰과 ‘가짜뉴스’의 조합은 낯설다. ‘가짜뉴스’란 표현이 정치적으로 남용되는 것을 우려해 정의를 좀 더 명확히 하자는 주장도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뉴스의 형식으로 포장해 신뢰성을 부여하고 혐오에 기반한 정치를 재생산하는 사례만을 가짜뉴스라고 부르고 이것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료적 해법을 서둘러 마련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의도된 오보’와 ‘가짜뉴스’는 다른가? 다르다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사실 ‘의도된 오보’는 저널리즘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의도된 오보’의 배후에는 대개 정치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 언론의 ‘의도된 오보’가 단순한 거짓말을 넘어 정치와 능동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은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는 미국의 ‘페니신문(penny press)’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페니신문이란 가격이 저렴한 대중지를 말한다. 1833년 뉴욕에서 발행된 ‘선’지를 시초로 친다. 184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페니신문이 위력을 발휘한 최초의 선거였다. 휘그당은 부동산 부자이자 지식-엘리트 계층이었던 윌리엄 헨리 해리슨을 원주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은퇴해 통나무집에 살면서 사과주를 즐겨 마시는 소박한 인물로 묘사했다. 이러한 인물상은 샴페인을 즐겨 마시며 귀족적 생활을 즐기는 집권당의 마틴 반 뷰렌과 대조됐기 때문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 상황은 전임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이 내세운 ‘보통 사람의 민주주의’란 구호를 고려할 때에야 완전히 이해된다. 휘그당은 앤드류 잭슨의 대중주의를 반대하면서 엘리트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세력이었지만 선거 전술에 있어서만큼은 ‘보통 사람’을 자처하는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잭슨 민주주의의 산물인 페니신문들은 휘그당의 이러한 이미지 전략을 대중에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했다. 이 사례는 오늘날 기득권이 ‘대중’의 외피를 둘러쓰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극우포퓰리즘과도 겹쳐 보인다.
클리블랜드 대통령 시기는 정치세력과 정파지의 결합으로 역사상 가장 혼탁한 선거가 진행된 때로 꼽힌다. 1884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집권 공화당 후보였던 제임스 블레인을 가톨릭을 모독한 사람으로 몰아 붙였다. 그를 지지하는 한 프로테스탄트 목사가 민주당을 “술과 로마 가톨릭, 반역의 당”이라고 했는데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 후보였던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사생아 논란에 시달렸다. 공화당은 “엄마 엄마, 아빠는 어디있어요?”란 구호까지 내세웠다. 각 세력을 지지하는 정파지가 이런 흑색선전의 전달 경로가 됐음은 물론이다. 선거에서 클리블랜드가 승리하자 민주당 지지 신문들은 공화당의 인신공격성 구호를 “백악관에 갔단다. 하하하!”란 제목으로 받아쳤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우리가 오늘날 보는 언론의 모든 문제는 이미 19세기부터 존재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 민주주의의 확대, 상업언론의 결합은 그때나 지금이나 ‘의도된 오보’가 힘을 얻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 방향이 유지되는 한 같은 문제는 외양만 바뀌어 반복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확대는 거부할 수 없는 과제이다. 따라서 ‘상업언론’이라는 형식에 도전하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 저널리스트라는 말이 자랑스러운 칭호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