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쫌 쉽게 써주세요!"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원장 KBS '사사건건' 앵커

김원장 KBS ‘사사건건’ 앵커. 지난해 9월입니다. ‘주택시장 안정대책 정부 합동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핵심은 종부세율 인상입니다. 부동산 대책에 세율까지 더해져 내용이 어려웠습니다. 관련 기사를 하나 쓰고 퇴근하는데 편집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 기사에 ‘인상된 종부세율 3.2%가 적용되려면 주택 가격이 181억원을 넘어야 하는데’라는 부분에서 ‘18억원이 181억원’으로 잘못 써진 것 아니냐는 겁니다(오타라고 생각한 듯~). 하지만 181억원이 맞습니다. 인상된 3.2%의 종부세율이 적용되려면 다주택자면서 과표가 94억원을 초과해야 합니다. 과표가 94억원이면 시세는 181억원 정도(라는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그러니 이 구간만 놓고 보면 참 ‘쓸데없는’ 세율인상입니다.


그런데 정부 보도자료에 이 부분이 강조돼 있습니다. 그러자 상당수 기자들이 종부세 세율이 3.2%까지 인상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직도 종부세가 너무 높다는 기사 대부분에 “세율도 3.2%까지 인상해” 라는 대목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날 정부는 ‘종부세 과표 3~6억원 구간’도 신설했습니다. 과표 ‘0~6억 원’ 구간을 둘로 나눈 겁니다. 사실상 세율 인상인데, 이 보도자료를 잘못 이해한 큰 언론사 한곳에서 <종부세 부과기준 9억에서 6억으로 인하>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러자 비슷한 기사가 순식간에 쏟아졌습니다(이날 오후 청와대 홍보수석실까지 화들짝 놀랐고, 기재부는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냈다.)


기자들의 오독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일단 보도자료가 너무 어렵습니다. 다음날부터는 “우리집은 5억밖에 안되는데 종부세라니 @@@야”라는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나온 ‘부동산시장 안정화 방안’은 그래서인지 홍남기 부총리가 비교적 쉽게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보도자료에는 개선되는 24개의 정책을 순서없이 배치했습니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초고가주택 대출전면금지’는 2번째에, ‘다주택자 한시적으로 양도세 중과 배제’같은 핵심 내용은 12번째에 슬그머니 배치됐습니다. 이쯤되면 ‘기자들이 이들 내용 중 뭐가 중요한지 찾아볼래요?’ 수준입니다.


게다가 용어 자체가 어렵습니다. 보유세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적용해서 결정되는데, 사실은 그냥 세금을 깎아주기 위한 명분입니다(공정시장가액비율이 80%면, 그냥 세금 20%를 에누리해주는 거다.) 그러니 정부가 애초에 ‘할인비율’이라고 쉽게 표현하면 됩니다. DTI 역시 ‘소득에 대비해 당신 대출이 얼마나 되느냐’를 따지는 비율인데,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냥 ‘소득대비부채비율’이라고 부르면 더 쉽습니다. 우리 정부의 정책 용어와 발표는 이렇게 ‘알 사람만 알아서 이해하세요~’가 참 많습니다.


경제뉴스는 어렵습니다. 그것을 잘 이해해서 쉽게 전달하는 건 물론 우리 기자들의 몫입니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뉴스의 ‘정보 Source’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정부도 바뀌어야 합니다. 기자가 아닌 국민 입장에서 보도자료를 내야 합니다. 가뜩이나 국민 모두가 기자가 되는 시대에, 보도자료는 더 쉬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정보 Resource’가 됩니다.


혹, 내용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쉽게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관료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분들에게 대기업이 내는 보도자료의 일독을 권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하는지. 그 ‘노오력의 자세’를 배울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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