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정서 부추긴 신종 코로나 보도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1923년 9월1일 일본 도쿄 일대 관동지방에서 발생해 15만명이 사망한 관동대지진은 그 자체로 비극적 대재난이었지만, 재난이 민족차별과 결합하면 폭력과 광기로 돌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당시 지진 직후 극심한 피해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일본 신문들은 ‘조선인들의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했는데 이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헛소문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결국 6000명이 넘는 무고한 조선인들은 분노한 일본인 자경단의 손에 희생됐다.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혐오와 배제 정서에 편승한 편견의 언어들을 쏟아낼 때, 언론이 흉기에 불과하다는 걸 되새기는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해 지난달 말부터 국내 유입이 본격화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안타깝게도 ‘전염병과 민족차별의 결합’이라는 병리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 당국이 내린 한한령 같은 대국답지 않은 태도, 홍콩 시위 사태 당시 국내 대학에서 목격된 중국 유학생들의 거친 행동 등이 국민들의 반중(反中) 의식을 자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중국발 전염병의 유입은 반중감정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면 중국발 전염병의 확산에 대해 언론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역사적 과오가 보여주듯 이는 불필요하게 양국민들의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언론은 국내에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기자마자, 삐뚤어진 인종주의적 반감에 편승한 흥미 위주의 보도를 쏟아냈다. 예를 들어 지난달 29일 한 언론의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 르포는 중국인 밀집지역 대림동을 “가래침을 길바닥에 뱉는 경우가 다반사고 비위생적으로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고 있다”는 식으로 묘사했다. 클릭수 유도 이외에는 감염병 확산 방지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보도다. 외국인들의 건강보험 무임승차에 대한 불만을 부추긴 보도도 있었다. 월 7만원의 건보료를 내고 4억7500만원 상당 치료를 받은 중국인이 있다는 제목의 보도였는데, 외국인에게 쓰인 건강보험 재정의 72%가 중국인에게 사용된다는 내용까지 더해져 마치 중국인들이 부당하게 제도적 이득만 취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내국인과 비교해서 중국인이 특혜를 얻는 구조인지, 특수한 사례를 침소봉대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던 점은 기사로서도 결격이다.


방역과정의 문제점을 짚는 것은 언론의 본령이지만, 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해 반중감정과 방역문제를 결부시킨 보도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정부가 감염병의 명칭에 특정 지역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에 따라 ‘우한 폐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사용하도록 주문한 것은 수긍이 가는 조치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 문제와 연관시키는 등 집요하게 문재인 정부의 ‘중국 눈치보기’ 프레임으로 몰아갔다. 우리 방역 시스템이 감염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단계이고, 중국과의 외교안보적 문제를 감안해야 하는데도 일부 언론은 성급하게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민자, 성소수자, 난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오랫동안 냉대했던 우리 언론은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노골적인 인종주의를 드러내며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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