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혐오장사

[언론 다시보기]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중국인, 아시아인, 중국계 이주민에 대한 혐오·차별이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공식명칭이 보여주듯 이 바이러스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위협인 반면 인종주의와 제노포비아(xenophobia)에 기반한 혐오·차별은 오래된 위협이다. 전염병 발생 시기에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담론이 강화되고 이러한 담론이 인권 침해를 낳은 사례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바이러스 감염은 인종이나 국적을 구별하지 않지만, 제노포비아는 자신이 속한 내(內)집단(‘우리’)이 자신이 속하지 않은 외(外)집단(‘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나타난다. 경제적 불황, 범죄, 재난, 전염병 등이 발생하면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그들’이 초래했다고 비난하는 혐오표현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때 “근거 없는 혐오표현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것은 ‘그들이 위험한 집단이기에 그들의 인권을 제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고, 대상 집단에 대한 폭력의 명분으로 이용될 위험”이 있으므로 언론은 “혐오와 적대 현상을 단순 전달할 게 아니라, 사회적 분쟁의 책임이 특정집단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전달해야 한다.” 큰 따옴표로 인용된 부분은 지난달 16일 한국기자협회를 포함한 미디어 단체들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 세부실천사항 여섯 번째에 담긴 내용이다.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져왔다.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감정도 전염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감정 전염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타인의 표정, 발성, 동작, 표현 등을 모방하는데, 감정의 구심성 이론은 신경 세포의 자극 전달 경로가 ‘뇌에서 근육(원심성)’이 아니라 ‘근육에서 뇌(구심성)’라고 본다. 요컨대, 웃는 얼굴을 보면 따라서 웃게 되고, 웃게 되면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감정 전염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네트워크를 통해 확대되어 집단성을 띠게 된다. 보통 3단계(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거친다. 둘째, 부정적 감정의 전염력이 긍정적 감정의 전염력보다 강하다. 셋째, 감정 전염은 대면 상황뿐만 아니라 비대면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2012년 페이스북이 이용자 몰래 실험해보니 긍정 게시물에 더 노출된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을, 부정 게시물에 더 노출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게시물을 더 많이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적 반복, 인종주의와 제노포비아의 속성과 발현 양상, 혐오표현이 초래하는 해악, 감정 전염의 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만이 아니다. 혐오의 확산을 막고 인권을 보호하는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응수칙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첫째.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흥미성 보도, 불안감과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 혐오에 편승하는 보도(소위 혐오장사)를 중단하자. 둘째. 3주 전의 약속,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을 되새기고 지키자. 셋째. 대항표현(#나는_바이러스가_아니다)과 응원의 목소리(#우한_힘내라)에 주목하자. 넷째. 포용과 지지, 연대의 감정을 확산시키는 보도에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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