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의 투자, 페북의 지원

[이슈 인사이드 | 금융·증권]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전설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은 자신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2012년부터 매년 작은 이벤트를 해왔다. 신문 던지기(newspaper tossing) 대회다. 약 10여 미터 떨어진 가정집 현관문 모형 앞으로 신문을 가장 정확하게 던지는 사람이 우승자다. ‘컴퓨터 두뇌’ 빌 게이츠도 사방팔방 신문 속지를 흩뿌리며 실패한 이 미션을, ‘신문배달 소년’이었던 버핏은 왕년의 실력을 뽐내며 완수하곤 했다. 주총에 이런 깜찍한 행사를 진행할 정도로 버핏의 신문 사랑은 유명하다. 어릴 적 투자 종잣돈의 원천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신문중독자라고 칭하며 죽을 때까지 종이신문을 사랑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해왔다.  


그런 버핏이 신문 사업을 포기했다. 버크셔 헤서웨이를 통해 보유해왔던 31개 지역 신문사를 1억4000만달러(1650억원)에 미국 출판사 리 엔터프라이즈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미국 언론이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이는 여러 면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투자자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 회사의 성장국면에 베팅하는 ‘모멘텀(혹은 마켓타이밍) 투자자’와 한 기업의 불변의 가치에 투자하는 ‘밸류 투자자’. 가치투자의 대가 버핏이 지역신문사들을 산 것은 2012년이었다. 당시 버핏은 편집장들에게 띄운 편지에서 “지역신문들은 지역밀착형 기사를 제공하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고 역설하며 “앞으로 더 많은 지역신문을 사들일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주식을 살 땐,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서 산다.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손해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경우”라고 썼다. 당시만 해도 신문의 불변 가치를 알아보는 버핏의 남다른 혜안을 신문업계 종사자들은 환영했다. 그러나 투자 천재 버핏은 10년도 안돼 결정을 번복했고, 그 정도로 신문산업 몰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지역신문사의 가치가 평균 50억원 수준이라는 점 또한 놀라운 지점이다.


모든 신문사의 미래가 암울한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뉴욕타임스와 같은 전국기반의 대형 신문사들은 대대적인 투자로 디지털화에 성공하며 오히려 구독자수와 매출을 늘려 나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양극화의 파고는 유통, 제조업뿐만 아니라 신문산업에도 밀려왔다. 현지 언론들은 한계상황에 몰린 지역신문사들이 추가로 매물로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미국의 IT공룡들의 행보는 묘한 대목이다. 지난해부터 페이스북은 미국의 지역언론에 3년간 3억 달러를 직접 지원하고 있다. 구글 역시 비슷한 지원사업을 앞서 시작했다. 지역언론을 고사시킨 주범인 IT플랫폼 기업들은 “건강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데 지역 뉴스가 필요하며 사람들은 이를 원하고 있다”고 지원 배경을 밝혔다.


좋은 뉴스의 가치는 돈으로 셀 수 없고, 그래서 돈은 안되는 신문산업.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은 그 속성상 이런 산업을 ‘지원’은 할 수 있지만, ‘소유’는 하기 싫은 것이다. 다만, 완전한 프리 라이딩만 했다가는 망해버릴 위험이 있으니 연명 지원을 하는 셈이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미스매치가 남의 나라일만은 아니어서 미국 지역언론사들의 앞길이 더욱 궁금해진다.


지역언론인들이 버핏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는 상황에서, 참가자 폭주로 2018년부터 잠시 중단했던 버크셔 주총의 신문 던지기 대회는 앞으로 영원히 볼 수 없을 듯하다. 참고로 버핏은 역시 투자의 귀재답게 망해가는 지역신문 사업에서도 원금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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