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옆 나라 인도네시아

[글로벌 리포트 | 인도네시아]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고찬유 한국일보 자카르타특파원. “거기 기사거리가 있겠어?” “지진 등 재난 기사만 너무 쓰지 말아달라.”


인도네시아 부임 전 귀에 박힌 두 마디다. 전자는 언론사 몇몇 선배, 후자는 우마르 하디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한 말이다. 합쳐서 ‘인도네시아엔 지진 기사만 있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그간 읽은 인도네시아 관련 기사를 떠올려보니 틀린 얘기도 아니었다. 2005년 파키스탄 강진 현장을 약 한 달간 취재한 경험을 활용하리라,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난생 처음 인도네시아 땅을 밟은 지 어느덧 1년, 300건 가까이 작성한 기사 중에 지진 발생 기사는 딱 두 건(지진을 언급한 기사는 11건)이다. 발리(인근 해저 규모 5.4)와 자카르타(인근 해저 규모 7.4)를 뒤흔든 지진이었다. 연 1만건, 규모 5.0 이상 지진만 해마다 300건 가까이 발생하는 인도네시아 상황을 감안하면 지극히 적은 수치다. 피해 규모, 한국과의 연관성을 따지고 고민한 결과다. 아울러 소재의 특성상 들러붙는 막연한 공포를 가급적 덜어내고자 했다.


물론 지난해 7월 탕쿠반 프라후 화산 분출 현장을 취재한 뒤 화산재 탓에 한 달간 멈추지 않는 기침에 시달렸고, 8월 자카르타 지진 때는 가족이 한밤에 아파트 11층에서 긴급 대피하는 아찔한 순간도 겪었다. 9월 수마트라 열대림 화재 현장에선 말 그대로 숨이 막히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강력한 재난은 다른 것들을 압도하면서 일종의 선입견을 구축한다. 더구나 기사라는 매개를 통해 반복 전달되는 관련 정보는 연판처럼 의식에 고착한다. ‘인도네시아=지진’ 처럼.


단편적인 정보와 지식이 어떻게 실제와 실상을 왜곡하고 가리는지 가늠하는 사례는 또 있다. “발리 옆에 붙은 나라인가” “자카르타는 어느 나라” “이슬람교가 국교라며” 등의 엉뚱한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상대가 묻기 전에 “잘 아시는 발리를 포함하고 있고 자카르타가 수도인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지만 이슬람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힌두교 유교 6개 종교를 인정하고 있어요”라고 운을 뗄 정도가 됐다.


나무랄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를 잘 모른다. 필자 역시 특파원 부임 몇 달 전에야 인도네시아 주요 섬 5개 이름을 외우고, 속성으로 근대사를 공부하고, 독학으로 인도네시아어를 익히느라 애먹었다. 2억7000만명을 거느린 세계 4위의 인구 대국, 우리나라의 20배 가까이 되는 땅덩이, 동서 길이가 5000㎞에 달하는 1만7000여개의 섬 나라, 300여개 민족이 ‘다양성 속 통일(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을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은 현지에서 발로 뛰면서 시나브로 실감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는 우리의 오랜 우방이다. 사실상 한국 기업들의 해외 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해 준 국가다. 1968년 ‘한국 해외 투자 1호’ 남방개발(KODECO)의 원목 사업과 이듬해 진출한 코린도그룹, 1973년 ‘한국 해외 생산 플랜트 수출 1호’인 대상기업(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건설, 1981년 ‘한국 최초 해외 유전 사업’ 서마두라 유전 공동 개발 등 1호가 많다. 우리가 개발한 프로펠러 훈련기 KT-1과 제트 훈련기 T-50을 처음 수입한 나라, 우리 기술로 만든 잠수함을 가장 먼저 구매한 나라, 우리와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을 위해 협력하는 첫 나라가 인도네시아다. 특히 올해는 인도네시아 한인 이주 역사가 100년 되는 해다.


따지고 보면 잘 몰라서, 무관심해서, 무성의해서 기사거리가 없어 보였을 뿐이다. 외신과 현지 매체 보도를 번역하는 수준의 흥미 위주 기사 작성 관행은 인도네시아를 ‘세상에 이런 일이’ 류로 소비하게 만든다. 고백하건대 부임 초기 현지 매체 보도를 추가 취재해 작성한 기사를 몇 달에 걸쳐 5번 고친 적도 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그야말로 고역이다. ‘특별히 파견된 인원’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일하려 애쓸 뿐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자카르타 포함 34개주가 있다. 특파원 3년 임기를 감안하면 매달 한 군데씩 다녀야 모두 돌 수 있다. 작년 한해 13개주를 취재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기’ 위해, 그리고 정확히 쓰기 위해, 아직 갈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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