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청와대 직행, 기자인 게 부끄럽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의 각사 책상은 가로 약 90cm 정도로 비좁다. 다닥다닥 붙은 독서실 같은 이 기자실은 정권 비판의 최전선이다. 바로 그곳이 참여정부 시절, 강민석 당시 중앙일보 기자의 자리였다. 기자실에서 나와 약 20보 걸어가면 ‘닫혔음’이라는 팻말을 목도하게 된다. 이 팻말과 기자실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줄담배를 피우던 강민석 당시 기자의 모습을 후배들은 기억한다. 그런 그가 이젠 ‘닫혔음’ 팻말의 다른 저편에 서는 것을 택했다. 지난 2일 중앙일보에 사표를 제출한 뒤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6일,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새 명함을 판 것이다. 중앙일보 노동조합이 냈던 유감 성명의 표현대로, “편집국의 문을 나서자마자 청와대 여민관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그 문턱을 넘으며 강민석 대변인은 이렇게 자문했어야 한다. 왜 기자가 됐는가. 나의 이 선택은 후배 언론인에겐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경향신문을 거쳐 중앙일보에서 그가 써낸 수많은 정치 기사들이 사심(私心)에서 100% 자유로웠다고 볼 수 있을까. 뭐가 그리 급했는지 청와대로 직행한 그의 행보는 이 모든 질문에 회의감을 더할 뿐이다.


그의 후배들은 그를 ‘글에 대한 깐깐함’ ‘장인정신 데스킹’으로 기억한다. 아니, 기억했다. 이 정부에서 다수의 언론인이 염치불구하고 최소한의 유예 기간도 거치지 않은 채 청와대로 직행한 것은 실망을 넘어 자괴감까지 안긴다. 비판자에서 바로 대변자가 되다니, 이런 180도의 표변을 상식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참담할 따름이다. 강민석 대변인 개인의 변심을 넘어 이 시대 저널리즘이 죽었다는 의미로까지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음을 강 대변인과 청와대는 알아두길 바란다.


강 대변인은 이제 춘추관의 기자석이 아닌 연단에 선다. 혹시라도 그가 과거의 연을 악용해 후배 기자들에게 불필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일은 없길 바란다. 중앙일보 노조의 성명서대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기자를 대변인으로 기용했다고 해서 후배 기자의 펜 끝이 무뎌질 것이란 오판은 금물”이다. 청와대 역시 얄팍한 계산으로 언론인을 기용하는 행태는 그만두길 바란다. 서로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다.


그가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중앙일보가 수년간 디지털 혁신을 내걸고 기존 레거시 미디어 측 인력을 결과적으로 홀대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을 터다. 그와 함께 중앙일보 정치부의 쌍두마차로 꼽혔던 박승희 전 편집국장 역시 비슷한 시기에 삼성경제연구소로 이직을 택하며 쇼크를 안긴 것은 공교롭다. 이 언론사의 대표적인 ‘신문쟁이’였던 두 인물이 각각 재계와 정계로 제발로 넘어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앙일보의 디지털 드라이브가 결단을 재촉했어도 3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한 두 사람의 선택지가 청와대와 삼성이었다니 씁쓸하다. 강 대변인은 불과 약 1년 전인 지난해 1월4일, 당시 야인이었던 대통령의 최측근 양정철 현 민주연구원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기사의 시작은 이랬다. “세상에 별의별 권리가 다 있다. 잊혀질 권리?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2017년 5월 총총히 떠나면서 주장한 권리다.” 이제 청와대 비서진의 한 명이 돼버린 그에게, 잊혀질 권리란 없다. 그는 10일 첫 대변인 브리핑에서 “신임 대변인으로서 대통령의 말뿐 아니라 마음까지 전달하고 싶은 게 각오이며 목표”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입뿐 아니라 귀로서도 충실히 역할을 하도록 바라는 건 무리일까. 밖의 비판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 그것이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지름길임을 그가 제일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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