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사태서도 작동한 극우 이데올로기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코로나) 확산 이후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전세기를 띄워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자국민을 철수시켰다. 처음엔 너무 먼 거리와 비용 문제로 자국민 철수에 다소 부정적 입장이던 브라질도 우한 체류자들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자 대통령실 소속 공군기 2대를 보내 34명을 데려왔다.


공군기는 브라질 시간으로 지난 5일 낮 브라질리아 공군 기지를 출발해 브라질 북동부 지역과 스페인, 폴란드, 중국 국경 지역을 거쳐 7일 우한에 도착했다. 공군기가 브라질 중서부 아나폴리스 공군 기지로 돌아온 것이 9일 새벽이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 걸린 자국민 철수 작전이었던 셈이다.


브라질의 자국민 철수를 두고 중남미 지역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사실 브라질이 우한에 공군기를 보낸다고 발표하자 중남미 일부 국가들은 외교 채널을 통해 자국민도 함께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볼리비아,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파나마 등이 브라질 정부에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는 요청을 모두 거절한 채 자국민 34명 외에 폴란드인 4명과 그들의 배우자 등 6명을 공군기에 태웠고, 6명은 귀환 길에 폴란드에서 내렸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아르헨티나 외교관은 “브라질의 극우정권이 정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이웃나라를 외면했다”고 비난했다. 미국과 브라질, 폴란드, 헝가리의 우파 정권들은 최근 복음주의 기독교관에 입각한 ‘종교적 자유동맹’을 결성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올해 상반기 폴란드와 헝가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스라엘까지 합쳐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선호하는 우파정권 국가들이다. 결국 중남미 이웃보다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폴란드 국민 철수를 더 우선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한에는 콜롬비아인 14명, 아르헨티나인 12명, 볼리비아인 10명 등이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남미 국가들의 비난과 반발이 거세지자 브라질 외교부는 뒤늦게 “중남미 국가들의 요청을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공군기 탑승 인력과 의료진, 탑승자 공간 확보 등을 고려하면 다른 나라 국민을 태우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수작전에 동원된 공군기의 탑승 인원이 각각 4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브라질 외교부의 발표는 궁색한 변명이 돼버렸고 이웃을 외면했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한 자국민 철수를 둘러싼 논란 외에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특유의 돌출적인 발언과 독단적인 행태로 국내외로부터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원주민들이 변하고 있으며 그들도 점점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고 있다”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이에 원주민 지도자는 “보우소나루는 우리의 인간성을 부인함으로써 또다시 헌법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분개했고, 인권단체 대표는 “점점 인간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자는 다름 아닌 보우소나루”라고 거칠게 반박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심판 무죄 판결 기념 연설을 시청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 시간 넘게 생중계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환호를 보내거나 그의 정적과 언론을 질타하는 등 ‘브라질의 트럼프’다운 행동도 했다. 이에 좌파 노동자당의 룰라 전 대통령은 “미국에 굴종하는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비난했고,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 기반 가운데 하나인 군부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세계 각국의 유명 예술가와 지식인들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행태에 분노를 표시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웹사이트에 ‘브라질에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제목의 탄원이 올랐고, 문화예술인과 지식인 2700여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강력한 메시지와 함께 보우소나루 정부가 보편적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도록 하려면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제 집권 1년을 갓 넘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위태로운 극우 행보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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