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와 마틴 스코세이지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이서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이서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한국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잔치 뒤에는 거장 감독의 많은 명언이 남았다. ‘기생충’의 수상만큼 기쁜 일은 봉준호 감독의 작품과 발언들, 봉 감독이 헌사를 바친 많은 선배 거장들의 작품과 발언이 재조명되는 일이다. 국내 관객들도 함께 손에 땀을 쥐며 ‘오스카 레이스’를 응원하면서 자연스레 다양한 감독들의 명작이 알려지고 관객들은 더욱 풍요로워진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특히 봉 감독이 감독상 수상 소감으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명언을 언급하며 헌사를 바치자 스코세이지의 글과 영화들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78세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영화를 만들며, 지난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를 ‘테마 파크’에 비유해 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쟁에 불씨를 붙였다.


근래 다시 화제가 된 그의 글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014년 이탈리아 시사 매체 L’espresso를 통해 공개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영화라는 개념이 이제는 종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아버지로서 딸 프란체스카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 내용은 ‘영화’라는 장르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후배들에게 보내는 찬사이기도 하다. 이 편지 속 ‘영화’를 ‘저널리즘’으로 바꿔 읽는다면 우리 기자들도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한, 한 시대를 지배한 거장의 따뜻한 조언으로도 읽힌다.


영화와 저널리즘은 비슷한 위기에 처해있다. 유튜브와 OTT, SNS 등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의 속도에 치여 생산과 소비의 개념이 완전히 뒤바뀌고 산업 구성원들이 큰 도전에 직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널리즘만 보면 어떤가. 세계 곳곳에서 가짜뉴스가 오히려 진실을 공격하며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개념은 전복되고 있다. ‘팩트’와 ‘현장’의 의미가 지금만큼 위협받은 적은 없었다.  


“기술 발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화는 도구가 대신 만들어주지는 않는단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지. 자유롭게 카메라를 들어 촬영한 다음 편집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영화를 ‘너 자신이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란다. 거기엔 지름길이 없지.”


스코세이지는 ‘영화산업이 위기다’라는 말 따위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영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그가 편지에 일일이 열거한 이러한 감독들의 이름은 지난해 뉴욕타임즈 기고에서 한층 더 풍성해졌다. 영화계에는 열정과 자신만의 시각으로 희망을 틔우는 사람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든 뉴스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만들어진 결과물 그 자체이지만 결국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진보시키는 것은 작품 뒤에 숨은 사람이다. ‘기생충’이 언어라는 ‘1인치 장벽’을 깨부수고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 뒤에서 지름길 없이 자신만의 방식을 묵묵히 따라간 감독과 많은 영화인들의 열정이 훌륭한 앙상블을 이뤘기 때문이다. 위기는 언제나 지름길을 모르는 이들의 열정으로 타개된다. 스코세이지의 편지는 격려로 끝을 맺는다. 그의 말이 젊은 감독을 오늘날의 거장으로 이끌었듯 ‘저널리즘의 위기’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불빛이 되어 주기를.


“이건 영화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란다. 세상 어떤 일에도 지름길은 없다. 꼭 모든 것을 어렵게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야. 네게 불씨가 될 목소리는 바로 너만의 목소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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