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 온갖 정치구호가 넘실댄다. 바야흐로 총선의 계절이다. 하지만 9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했다. 선거일 전 180일부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글 등을 게시하지 못하게 한 공직선거법 제93조 1항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고 이때부터 인터넷 매체를 통한 선거운동이 허용됐다. 19대 총선을 4개월여 앞둔 2011년 12월29일의 일이다.
이번엔 신문 지면이 문제가 됐다. 지난달 28일 경향신문에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기고한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가 주인공이다. 임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고발당했다. 임 교수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진 뒤 비난 여론이 일자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은 고발을 취하했다. 사건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지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 여당의 인식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대하다.
다시 2011년 12월29일로 가보자. 이날 당시 민주통합당 오종식 대변인은 서면을 통해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정부 여당은 SNS를 통한 의사표현을 금지해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민주정치의 발전을 가로막아왔다는 점에서 헌재의 결정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 여당이 이를 자성의 계기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정부 여당은 자신의 말조차 주워 담지 못하고 있다. 오 대변인은 현재 대통령비서실 기획비서관이다.
비교적 최근에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은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야당 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적으로는 조금 창피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비판과 감시에 명예훼손으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결코 해서는 안 된다”며 “만약 우리당이 집권하면 그런 점을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임 교수에 대한 고발로 인해 이 보장은 공수표가 됐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만 빼고’의 원조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낙천낙선운동을 이끌었다. 낙천낙선운동의 놀라운 성과에도 법적 분쟁이 이어졌고 결국 박 시장은 2004년 대법원으로부터 벌금 50만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박 시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공개한 글이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선거법 조항은 지킬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그 조항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을 유린하는 것입니다. (중략) 악법이 법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선거법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해 위헌이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선거 6개월 전부터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제한하는 선거법 제93조 1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언론사의 공정한 보도를 규정한 선거법 제8조에 대해서도 공정성과 언론의 자유 사이 합리적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과거엔 이런 주장이 주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입에서 나왔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고발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인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지금도 그때도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라고 할 수는 있어도, ‘민주당만 빼고’ 비판하라고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