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 해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50년 전 달 탐사를 떠난 아폴로 13호의 산소 탱크가 터졌을 때, 우주비행사들이 미국 휴스턴에 있는 NASA 관제센터를 향해 외쳤다. “Houston, We’ve had a problem(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휴스턴에 문제가 또 생겼다. 이번엔 야구다.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사인 훔치기’를 일삼았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불법엔 쓰레기통부터 카메라까지 온갖 수단이 총동원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조사 결과 애스트로스 선수들은 외야 펜스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 상대 팀 사인을 간파한 뒤 타석에 선 동료에게 쓰레기통을 두들기거나 휘슬을 불어 전달했다. 애스트로스는 2018년과 2019년에도 유니폼에 전자 버튼을 달고 사인을 훔쳐 경기했다는 의혹을 받지만, 내부 고발자가 상세하게 폭로한 3년 전 일만 인정했다.


아폴로13호는 달 뒤편을 한 바퀴 돌아 어찌저찌 지구로 귀환했지만, 사인 스캔들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애스트로스 선수단이 반성과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으로 나와서다. 외야수 조시 레딕은 “꿋꿋하게 싸워 이겨서 모두를 입 닥치게 하겠다”고 말했다가 생후 5개월 된 쌍둥이 자녀가 살해 협박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는 3년 전 일을 털어놓은 마이크 파이어스를 향해 “너도 우승을 기뻐했으면서 폭로할 자격이 있느냐”고 비난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가벼운 징계를 내린 것도 기름을 부었다. 사무국은 당시 단장과 감독에게 자격 정지 1년, 향후 2년간 신인드래프트 지명권 제외, 구단 벌금 약 60억원을 결정했다. 정작 선수 징계나 우승 트로피 박탈은 없었다.  


2017년 애스트로스 2루수 호세 알투베와 시즌 MVP 경쟁을 벌였던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는 “역겹다”고 했고, 월드시리즈에서 격돌했던 코디 벨린저(LA 다저스)는 “우리의 우승을 강탈당했다”고 분노했다. 다르빗슈 유는 가장 억울한 선수다. 당시 월드시리즈 3차전과 7차전에서 다저스 선발로 나와 모두 2회를 못 넘기고 강판돼 패배의 원흉으로 몰렸다.


다르빗슈는 주무기인 직구와 슬라이더 투구 폼이 비디오 분석으로도 차이를 찾기 어렵다고 정평난 투수였다. 이 두 경기에선 기이할 정도로 난타당했다. 그는 본인의 습관이 간파당했다고 자책하고 투구 폼을 교정하느라 긴 슬럼프에 빠졌다. FA 계약도 손해봤다.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구단이 해체될 겁니다. 미국엔 미안하다고 말하길 꺼리는 문화가 있어서인지 잘못했다고 고개 숙이는 사람이 안 보이네요. 부정 행위가 들통나면 올림픽 메달을 뺏기는데, 애스트로스는 왜 우승 트로피를 아직도 갖고 있는거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할 조짐인 것처럼, 명백한 잘못이 드러나도 절대 사과하지 않는 문화가 글로벌 유행인 모양이다. 코로나 사태의 진원지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아직도 공식 사과가 없다. 일본 아베 내각은 요코하마항에 크루즈 승객 3700여명을 가둬놔 바이러스 전염을 가속화시키고도 올 여름 도쿄 올림픽 치를 생각만 한다. 한국 정부도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실패는 물론 조국 사태와 부동산 정책 실패, 청와대 선거 개입과 검찰 수사 방해 논란 등 최근 드러난 일들에 대해 속시원한 사과가 없다. 잘못한 사람은 제발 미안하다고 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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